“인문계만 명문고 되라는 법 있나요”
“인문계만 명문고 되라는 법 있나요”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6.03 00:00
  • 호수 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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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직면 농촌학교, 특목고로 전환
명문고 만들기 주역

   
▲ 한산애니메이션고등학교 최영완 교장
농촌 학교가 다 그렇듯 입학생의 급감으로 폐교논의가 일던 한산상업고등학교를 애니매이션 분야 특수목적고로 전환해 명실공히 명문고 입문을 꿈꾸게 한 주인공을 만났다.

애칭 애니고로 불리는 충남애니매이션고등학교 최영완 교장은 교직생활 37년째로 올해 환갑 나이다. 체육전공 교사라는 이미지 때문에 아직 당당한 직업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런 최영완 교장이 체육과를 선택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 검도를 하면서 몸이 호전되었고 그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까닭이라고 말한다.

인천에서 대 중국무역을 하던 아버지가 납북되고 다음해 한국전쟁이 터지고 말아 그가 예닐곱 되던 해 아버지와 생이별 한 어머니의 무녀독남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의 눈에 서러움이 묻어난다.

“실은 과학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저와 떨어져 사는 것을 두려워 하셔서 고향인 공주에 남아 공부 했습니다”이토록 어머니와 함께한 가정을 애틋하게 지켜온 그는 지금 혼자 산다.

학교 재정이 열악해 특수목적고 특성상 외지에서 진학한 학생과 군내라 해도 아침저녁으로 통학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장관사까지 내어주고 여관방 신세였다. “여관에서 생활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대요. 다행히 얼마 전 빈집을 얻어 살게 되었습니다”며 끼니는 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과 반 정도는 같이 먹고 나머지는 혼자 해먹는 다며 “예전부터 직접 해 먹던 터라 잘 합니다”고 너스레를 떤다.

학생 기숙사는 자주 돌아보냐는 물음에 조립식 건물이라 기숙사라는 이름도 못 갖고 합숙소라며 전에는 자주 돌아봤는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안 보고 싶단다. 학생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집에서 귀한 자식들인데 학교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비좁고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맘이 짠하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좁은 관사 안은 거실에까지 2층 침대가 사람하나 돌아다닐 공간을 두고 빼곡이 들어차 있다. 게다가 화장실은 하나, 3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20여 평 되는 집에서 기거하고 있으니 속상할 만도 하다.

그나마 올해까지는 그럭저럭 외지학생들을 수용했는데 기숙사가 해결되지 못하면 내년엔 외지학생 입학을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애니고는 일찍이 전문인을 꿈꾸고 전국에서 찾아온 학생들 덕분에 특목고 이전엔 한해 20명 남짓 입학했으나 지금은 80명 정도가 입학을 한다. 농촌 현실을 감안할 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최 교장은 교육청 태도와 지역주민들이 학교를 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서 “한산상업고등학교로 부임할 때 언짢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지역 주민들이 애니고와 또 그 학생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뿌듯한 마음이다.

그는 근무연한만 해결된다면 이런 애니고에서 정년을 맞고 싶어 한다. 갖은 노력으로 상업계열을 애니매이션이라는 특목고로 전환했고 교사들의 재교육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또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컨텐츠진흥원의 학교시설지원 자금을 확보해 필요한 장비도 확보하게 됐다.

최 교장에게는 오로지 애니고의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몰려오는 학생들을 수용할 기숙사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게 한이다.
현재 인적자원부에서 지방마다 명문고를 만든다고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명문고는 인문계고교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개발 하는 일’ ‘진정한 지방분권’이런 명제들이 혼란스러울 때 옆에서 지켜보던 한 교사가 거든다.
“이토록 열심히 해보겠다는 데 이번에 기숙사신청 자금이 도에서 상정하는 예산에서도 후 순위로 밀려 있다네요”

지역에 명문고 하나 들어서는 효과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다 아는 일이다. 큰 보탬이 되어줄 수 없는 기자는 수심 가득한 최영완 교장을 뒤로하고 애니고 교문을 나서면서 ‘정부고 군이고 돈을 쓸데다 써야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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