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지역답사를 다녀와서’
‘내포지역답사를 다녀와서’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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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학생문화유산답사 기행
판교중학교 2학년 지하나
   
▲ 제 3 회 서천문화원 학생문화유산답사단
사회선생님께서 문화유적 답사하는데 갈 사람을 모집하셨다.
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당연히 손을 번쩍 들었다. 손드는 사람이  많을 걸로 예상하고 누구보다도 일찍 들었는데, 드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경쟁상대가 적어서 좋았지만, 좀 씁쓸하기는 했다.

선생님께서도 답사 일정이 너무 좋다며 동행하시고 싶어하셨으나,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선생님은 절에 가셔야 하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셨다. 답사하기 전 나는 내가 가는 답사장소를 알아보았다.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았는데, 너무 설레어서 읽고 또 읽었다.
내가 가는 답사지 모두가 나와있지는 않았지만 일부가 나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같이 가는 사람은 1학년 은화. 답사하러 가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까봐 걱정했으나, 안면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훨씬 다니기가 재미있었다.

서천군민회관에서 모여 이름표를 받고 차를 타게 되었다. 가면서 애들이랑 수다도 떨고, 먹을 것도 먹으면서 즐겁게 갔다.

처음 가는 곳은 6학년 교과서에서 배운 해미읍성!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읍성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었다는 성! 나는 이것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또 중요한 것은 천주교인들의 순례지이라는 것이다.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호야나무(회화나무)에서 목매달려 죽었다고 한다. 2조를 인솔해주신 박영수 선생님께서는 7년 전에 왔을 때에 핏자국과, 가지에 줄 묶였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말씀하셔서 조금은 슬퍼졌다.

그 때의 천주교인들이 지금 태어났다면 그런 박해는 받지 않았을 텐데…하고 말이다.
내가 책에서 본 바는 천주교인들이 죽을 때에 얼른 죽기를 원했다고 한다. 앞서 죽는 천주교인들이 죽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모습이 보기 싫어서 말이다. 해미읍성의 풀밭은 어느 잔디밭 못지 않게 푸르렀다.

해미읍성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원사지에 갔다. 보원사지는 보원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인데, 보원사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함은 절에서 가지고 있는 구조물을 거의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석조(승려들이 물을 담아 쓰던 용기)와, 당간지주(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을 달아 두는 기둥), 5층 석탑(탑: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건물, 하지만 사리뿐 아니라 경전, 불상 등이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부도(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건물), 비석 등 절에 있는 구조를 거의 지니고 있었다.

보원사지에서는 탑의 시대별 특징, 지역별 특징, 그리고 탑의 기능과 부도의 기능을 알 수 있었다. 보원사지에서 차를 약간 타고 가서 밥을 먹었다. 친구들과 그냥 돌이 있는 바닥에서 먹었는데, 밥이 맛있어서인지, 친구들과 같이 먹어서인지, 배가 많이 고파서인지, 밥맛이 일품이었다. 밥을 먹고 서산마애삼존불에 갔다.

친구 말로는 많이 올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리 많이 올라가지는 않은 것 같다. 서산마애삼존불은 내가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원래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하는 법인데, 마애삼존불은 그렇지 아니하였다. 마애삼존불의 의미는 대충 절벽을 깎아서 만든 3명의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불상의 이름짓는 방법을 알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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