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 옛 명성 꿈꾸는 백사장 사람들
장항 옛 명성 꿈꾸는 백사장 사람들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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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 맨발로 뒹굴며 모래장난
‘70년대만 해도 장항이 이렇지는 안았는데…’ 장항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또 서천군민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장항에서 장항의 옛 명성을 회복해 보자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음력 4월21일, 매년 있는 송림 백사장 모래 생일날이지만 장항 주민들에게 있어 올해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 어린이들 맨발로 뒹굴며 모래장난 가끔 조개 캐는 아낙이나 지친 듯 질펀히 누워있는 고기잡이배가 고작이었던 갯벌, 이곳에 풍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쳤다.마을마다 한 패 정도는 있었던 풍물패, 이제 언제 삶을 마감할지 모르는 노인들이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그 풍물패가 올 모래생일 만큼은 신명나게 판굿을 벌였다. 한 두 패도 아니고 마을마다에서 쏟아져 나온 여러 풍물패들이 송림 속에서 백사장에서 신명나게 놀아본 것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 먼지를 묻은 장구를 둘러메고 나와 모름지기 지역축제다운 축제를 일궈내고 있었다. 게다가 무리무리 달리고 뒹구는 아이들, 평소 같았으면 엄마 꾸지람이 두려워 옷을 챙겼겠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맨발로 달리고 서슴없이 갯벌에 빠지고 철푸덕 주저앉아 모래성을 쌓는 모습, 실로 오랜만에 보는 흥겨운 풍경이다. 애드벌룬에다 마을마다 뽑혀 나온 명가수를 응원하는 플래카드, 장항의 발전을 소원하는 기도 같은 플래카드들이 여기저기 펄럭인다. ▲ 어린이들 맨발로 뒹굴며 모래장난


이쯤 되면 저절로 맨발로 모래의 촉감을 느끼고 싶어진다. 상큼하고 부드러운 고운모래의 촉감.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 모래를 파고들면 온몸으로 스미는 대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모래찜을 하고는 한 사날은 씻지 말아야 효과를 본 다우” 하반신을 모래에 묻고 있는 할머니의 말이다. 모내기에 지친 육신을 백사장 모래기운으로 달래고 있는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남쪽 하늘을 볼라치면 하늘보다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듯 제련소 굴뚝, 곧 제거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지만 아직은 바위산을 뚫고 버티고 서서는 이방인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어스름, 아이들이 쌓은 모래성에 석양빛이 스미고, 노래자랑에서 일등 먹은 동네가수를 축하하는 팡파르가 울려 펴진 사월스무하룻날, 장항 사람들은 제련소 굴뚝 밑으로 사라져 갔다.

내년 이맘 때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장항의 옛 명성과 전설을 노래하면서, 게들이 꼼지락거리는 갯벌로, 아이는 무등타고 노인들은 풍장치며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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