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재래시장 50년 역사와 함께한
서천 재래시장 50년 역사와 함께한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호수 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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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대포집 주인, 이임례 할머니

   
▲ 서천시장의 산 증인 이임례 할머니.
6월 어느 주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서천재래시장을 찾았다.

활어시장과 파라솔을 펼친 노점들이 빼곡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빗발 탓에 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드물다.

목으로 따지면 할머니의 대포집은 나무랄 데 없는 곳에 있다. 대형할인마트와 시장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다.

2평 남짓한 점포와 간판도 없는 대포집이라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지만 많은 이들이 할머니는 물론 그 대포집의 존재도 모르는 채 스치고 있다.

할머니 13살 나던 해, 서천에서 양조장을 하는 친지를 연고로 보령의 탄광촌 도화담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줄곧 서천재래시장 붙박이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 그동안 아홉 차례에 거쳐 점포를 옮겨 다녔지만 서천시장을 떠난 일이 없어 서천재래시장의 역사가 되었다.

이 할머니는 올해 44살 된 유복자인 막내아들을 포함해 세 아들을 두었지만 “궁디만 갖고 사러, 즈그들도 자식 키움서 살기 어련디 나는 나대로 살아야지” 한다.

당신의 나이를 잊은 듯 한참을 헤아려 보곤 “팔십 하난 가뵈”하는 할머니, 그러고 보면 일곱 살, 네 살, 또 배내아이를 둔 각시가 홀로되어 전쟁 후 그 어려운 세월과 가난에 찌든 6·70년대를 넘어 못 볼 것 같은 이천년 대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50년 대포집을 하면서 맺었던 단골손님들 “지금은 늙어지고 딴 세상 사람이 된 이들이 손을 꼽을 수 없을 만치 많다”며 긴 한숨을 쉬는 할머니. 먼데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끝내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그래도 그 때부터 찾아왔던 노인네들이 지금도 와”하며 주름골골마다 웃음을 채운다.

함자를 묻는 기자에게 “이임례여, 이래 봐도 시장서는 다 알아주는 이름이고, 군서도 다 아러”하며 내미는 서천군청 소식지, 띠지에 당당히 적힌 ‘이임례’ 이름석자를 가리키며 “이 것 봐 여기 써 있자녀, 내말이 맞지?” 군내 집집마다 다 보내지는 소식지에 초라하게 써있는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임례 할머니, 순간 이름도 없이 오직 자식들을 위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낸 이 땅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숭고하리만치 서글픈 삶이 가슴을 옥조인다.

때마침 이임례 할머니의 수양아들이란 중년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들어서며 뉘냐 묻는다. “나 신문에 내준댜~” 할머니가 자랑처럼 말하자, 사이다 한잔을 따라 기자에게 건내더니 이내 빗속으로 사졌다.

잠시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 와서는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꺼내 준다. 송구해 하는 기자에게 “좋게만 써 주세유”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듯싶더니 뒤 돌아와서 “가다 생각하니깐 사이다 값을 안 치르고 갔자뉴”하며 1000원 짜리를 할머니에게 내밀고 할머니는 마지못해 받는다.

1000원 때문에 빗속을 뒤 돌아온 수양아들을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하루 단돈 만원 매상 올리기가 어렵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소주가 찻잔 한잔에 500원, 맥주컵 한잔에 1000원에 팔고 막걸리 한 사발에 1000원의 잔술을 파는 집, 안주를 팔아 돈 벌 생각은 50년 동안 해본 적이 없는 집, 아직도 서천에 이런 대포집이 있다는 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공짜로 내 놓는 안주가 변변할 리 없다.

오이에 고추장, 풋고추에 새우젓, 아니면 짜디짠 짱아지에 입정거리로 튀밥 한바가지다.

“이것도 안주라고 영감네들이 풋고추 다 집어 갔구먼” 하면서도 서운한 기색은 없다. “그래도 어쪄, 노인네들이 돈이 없어 논께, 별 수 없지”한다. 이런 걸 보고 동병상련이라는 것일 게다.

그 옛날 장터를 주름잡던 장정들이 이젠 힘없고 돈 없는 노인이 되어 그래도 단골이라고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하는 할머니다.  

이렇게 잔술에 공짜안주로 취기가 오른 할아버지들이 별것 아닌 일로 골목길 아이들 다투듯 가끔 싸움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이를 말리는 할머니의 손목엔 검은퉤퉤한 멍으로 성할 날이 없다.

싸움말리다 다치면 어쩌냐는 걱정스런 말에 “그래도 내 집 손님인디 말려야지” 내 몸 상해도 남의 불행 그냥 안 넘어가던 옛 인심마저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요즘 할머니는 심난 하다. 서천시장이 없어진다고도 하고 다들 이사 간다는 소문에 그렇다.
“내 집에 손님은 없어도 예 앉아서 사람 구경하다보면 하루가 심심찮았는디” 깨끗하고 잘 지어진 새 시장으로 모두 이사 가도 그 대포집은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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