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고, 아버지고, 남편이신 임을 모시옵고…
어머니고, 아버지고, 남편이신 임을 모시옵고…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7.23 00:00
  • 호수 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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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보고 깡패래” -명덕 스님
장마가 지난 지 수일인데 겉보기 멀쩡한 요사(寮舍) 대청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세숫대야에 물방울이 똑 떨어진다.

면사무소며 파출소, 농협, 문산면 관공서가 한목에 아우러 내려다보이는 수정사(修靜寺) 요사채의 마루에 걸쳐 앉아 모처럼의 누기 걷힌 바람을 느낀다. 비구니 명덕 스님이 거처하고 있는 수정사는 문산면사무소에서 불과 4백여 미터 떨어져있다. 이토록 속세와 접해 있으면서도 산사의 운치를 담고 있다.

세상에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고 한다. 어쩌면 기독교 신자인 사람이 스스로 암자를 찾아 비구니를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별일이겠다. 기자의 바쁜 출근길, 마당가 고무다라에 심겨진 수련이 딱 한 송이를 화려 하게 드러냈다.

아무리 급해도 한번쯤을 봐주고 어루만져야 좋을 성 싶게 고고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한 수련을 보고 사전 연락도 없이 수정사를 찾은 터다. 기자가 찾았을 때, 마침 서천읍내에 산다는, 5년 전 수정사를 찾아 불신자가 되었다는 지긋한 부인신도가 와서 늦은 아침동량을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명덕 스님은 다짜고짜 “이 동네 사람들은 나보고 깡패래, 어찌 이런 사람을 보러오셨나?” 한다. 속 시원히 ‘깡패가 깡패 만나러 왔습죠’하고 싶건만 초면에 농을 할 수도 없고 문산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에게서 얼핏 들은 팥죽 이야기를 꺼냈다.

“팥죽? 그거 작년에는 못했는데…. 많이 아팠어” 실례를 무릅쓰고 여쭌 나이에 명덕 스님은 “첫돌”이라 대답했다.

수정사에 몸담은 지 17년 째, 법당의 전면을 꽉 막아 선 요사채가 거슬려 현재의 터에 신축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시작했던 터다. 스님이라지만 육신적으로 노동에 약한 여자인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어렵게 동분서주 하는 것을 긍휼히 본 한 노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단다. 하여 조금이라도 그 분에게 보은할 요량으로 마을 경로당에 동지팥죽을 쒀, 찾기 시작했고 인근에 관공서가 많아 몇 년 째 함께 나누다보니 자연 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깡패라는 말은 명덕스님이 억척스레 노동을 한 탓이겠다. 작지 않은 규모의 요사채며, 진입로 주차장까지 손수 다져갔다니 말이다.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비구니에 대한 편견을 깨고야 말았으니 과히 짐작이 가는 마당이다.

또 수백 평은 됨직한 밭을 손수 일궈내 콩이며 더덕, 고구마, 들깨 등을 한밭가득 가꾸고 있다. 이런저런 모습이 마을과 가까운 탓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으니 지나치게 호탕한 모습이 자칫 ‘깡패’로 보였을 법하다.

함께 자리했던 부인이 한마디 거든다. “좋은 일 많이 하십니다. 노인이며 어려운 사람 찾아다니시고 해서 문산면에서 감사패도 받으셨어요” 명덕 스님이 이 말 끝에 창피하다며 그만 두라 하였다. 부인의 말대로 그도 그럴 것이, 군수, 도지사 상이야 당사자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어찌 추천하면 받을 수 있는 상이지만, 속내를 다 아는 동네에서 받은 상이야 말로 값진 것이겠다.

출가한 비구니들에게는 모두 사연이 있게 마련 “외로워서 출가했지, 꼭 30년 됐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였다며 그 뒤 “부처님을 어머니고, 아버지고, 남편으로 알고 살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부둥켜 살지 않고는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음료를 나누며 얘기하는 도중에 집배원이 왔다. “더운데 시원한 음료 한잔하지, 어머니 건강은 어떠신가?” 명덕 스님은 친정조카 대하듯 편하게 집배원을 대한다. “뼈 빠지게 일해서 겨우 마누라 자동차 사주고, 헬스클럽인지 뭔지 다니는 거나 치다꺼리 하느냐?”며 호통도 친다.

여인네들이 쓸데없이 여기저기 차 끌고 다니는 꼴이 영 못마땅하다는 투다. 하긴 여인네고 남정네고 쓸데없이 비싼 기름 태우며 돌아다니는 꼴이 고울 리 없겠다.

누구나 꿈이 있듯 명덕 스님도 꿈이 있었단다. “노인분들을 좀 모시고 살고 싶어서 거처를 널찍이 잡았는데 여직 못하고 있네”라며 한숨 섞인 말끝에 자신의 부족한 탓을 한다.

오전 11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릴 시간이라며 장삼을 차려 입는다. 신혼 방에 들어가듯 정하고 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어머니고, 아버지고, 남편이라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녹슨 풍경이 바람에 몸을 떨고 소름끼치도록 선명한 능소화가 마당을 기어 다니는 수정사, 속세와 인접해 있지만 깊은 산사의 멋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절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묵직한 두려움을 일소해버리는 명덕스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소탈함이 나그네를 편하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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