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 <3>
늙은 엄마 <3>
  • 뉴스서천
  • 승인 2002.03.07 00:00
  • 호수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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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교에서 독서신문을 발표했는데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냈다며 신문에 스티커를 다섯 개나 붙여주셨다.
독서신문에 남아있던 주황빛 김치물도, 시큼한 냄새도 어디로다 날아 가버린 것 같았다.
어제 엄마를 할머니라고 놀렸던 남호와 경석이 얼굴도 자신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손에 책을 들고 오는 큰오빠 얼굴도 떠올랐다.
선생님께서는 다음 학예회 날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해도 좋을 작품이라며 발표할 시간을 주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공부가 끝난 뒤 청소당번이어서 새인이와 함께 집에 가지 못했다. 피아노 학원으로 영어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져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서는데 낯익은 옷이 보였다.
“아유? 왜 인제 나오냐? 다른 애들은 다 가더구만. 왜 이렇게 늦었어?”
엄마는 날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힘들고 지쳐 보였다.
“오늘 장날도 아닌데 왜 나왔어?”
“준영이 감기가 심해서 병원에오느라고. 점심 먹고 나와서 여직 병원으로 시장으로 다녔더니 지쳐 죽것다”
“그러게 왜 여기서 날 기다려?먼저 집에 가지”
“읍내까지 나와서 딸도 안 데리고 가면 어쩌냐? 시장 가서 순대 먹고 갈래?”
양손에 비닐 봉지를 두 개씩이나 들었으면서도 엄마는 내 손에든 독서신문을 가져가신다.
“이리 줘. 또 뭐 묻으면 어떻게하라고. 학예회날 발표도 해야하는데.”
“뭔 발표? 우리 딸이 또 뭘 잘 혀서 발표를 할까?”
“엄마는, 참.”
“준영아 고모는 공부도 잘하고신문도 잘 맹글고 못하는 게 없단다. 고모 이쁘지?”
엄마는 등에 업힌 준영이를 추스르며 나에게 눈을 찡긋하신다.
“고모 이뻐.”
준영이도 한마디 거든다.
“하하, 우리 준영이가 고모 이쁘다고 말도 하고 다 컸네.”
엄마의 검게 그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옛날순대집은 한가했다. 가끔 엄마와 장날 나와서 사먹고 가는 집인데 우리가 사는 마을까지 맛있다고 소문난 유명한 집이다. 김이 오르는 따듯한 순대에 소금을 찍어정신 없이 먹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선다.
“어? 이민지. 너 순대 먹으러 왔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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