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삼성
중앙일보와 삼성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5.08.05 00:00
  • 호수 2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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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언론을 평가하는 일은 오래 동안 묵계의 금기사항처럼 여겨 왔다.

이런 금기사항은 어쩌면 결국 ‘제살 깎아 먹기’가 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언론의 영악성(獰惡性) 때문 일 수도 있다.


매체비평 전문 프로는 아니지만, 시사프로의 꼭지로 특정 언론의 문제점 등을 다루기 시작한 것도 10년이 채 못 된다. 근자에 와서 묵계처럼 내려오던 매체 간 비평이 금기사항이던 시대가 끝났다.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공영방송 KBS의 ‘미디어 비평’이란 프로를 알 것이다. 그야말로 성역 없이 언론에 대한 비평을 과감하게 시도해 언론사(言論史)에 한 획을 그었다 하겠다. 또 한겨레와 조선일보 간의 비평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서천처럼 좁은 지역에서 매체 간 비평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공무원 관련, 또 단체나 정당 관련한 비평기사가 나간 후 ‘구독거부’에 시달려야하는 경험을 한 신문사의 입장이고 보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특정 대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쓰고 보도하는 기자나 편집국은 보통 강단 없이는 해 낼 수 없는 일이다.


예민한 사안을 취재하다보면 첫 번째 넘어야 할 벽이 ‘회유(懷柔)’이다. 기사로 인해 타격 입을 것을 예상한 취재원이 모든 인맥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물량공세(物量攻勢)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했다. 이 것 또한 겨우 기본생계유지를 하는 정도 자력으로 살아남으라는 식의 월급을 받는 촌동네 기자에게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더러는 ‘옳다구나’ 결탁하고, 더러는 수치심을 느끼면서 수용하고, 더러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안다. 여기까지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용납은 못해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 소위 말하는 ‘작업’ 기사이다. 누군가의 이권을 위한 사전모의에 의한 보도는 언론의 횡포이며 독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폭력이다.


최근 안기부 도청 ‘X파일’로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의 방패막이로 창간됐다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중앙언론의 언론을 빙자한 행위와 삼성그룹의 무소불위(無所不爲)한 권력남용이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도 중앙일보와 삼성그룹 같은 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심은 내년도 지방선거를 향해 벌써부터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는 이들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는 누구 계보이고, 누구와 연대하고, 누가 살기 위해서는 누구는 키우고 또 누구는 죽여야 한다는 기획이 벌써부터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단수의 ‘작업’-심하게 표현하면 장난-을 한다고 해서 독자들이 모를까.


기자는 신이 아니다. 따라서 항상 완벽하고 옳은 판단을 내린 다고 볼 수 없다. 다만 고심에 고심을 하면서 어떤 것이 옳고, 독자에게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또 사안에 대한 진위는 가장 잘 알고 있는 취재원 당사자들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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