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터 3.1운동을 아시나요?”
“새장터 3.1운동을 아시나요?”
  • 최현옥
  • 승인 2002.03.07 00:00
  • 호수 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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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터 만세운동 주도한 임학규씨 자손 임종석 할아버지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마산 신장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임학규씨의 셋째 아들 임종석할아버지(75·화양면 와초리)는 최근 부친의 묘를 자주 찾는다. 83주년 되는 3.1절을 맞았으나 올해도 이렇다할 행사 하나 없이 쓸쓸하게 보내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임학규씨는 3.1운동 후 형을 살고나와 서천건국준비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모든 지역 일에 솔선수범하여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서천군수가 공덕비를 세워주었다.
임할아버지는 “항상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며 부친으로부터 듣던 그 당시 3.1운동 상황을 말해준다.
서천지역 민중봉기인 3.1운동은 일본의 단속이 심해 타 지역 보다 늦은 29일에 일어났다. 만세운동은 처음 조남명씨에 의해 시도되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열기는 식지 않고 송기면씨가 주축이 되어 마산 새장터에서 오후 1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자주독립을 외쳤다. 이에 주모자를 비롯 여러 명이 경찰서 출장소에 유치되었고 이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고시상씨 외 6명이 경찰서에 들어가 유리, 탁자 등을 파손했다. 선동된 장꾼들까지 만세운동에 합세, 2천여 명이 참여하는 거국적 운동이 되었다.
임할아버지 고증에 의하면 마산 새장터로 장소를 선정한 이유는 마산이 화양이나 한산처럼 강을 끼고 있지 않아 발각시 도주하기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극기 제작은 노형래 지휘 아래 만들어졌는데 일본인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고추섬에 숨겨 운반했다”고.
이날 주동자들은 친일파에 의해 구속되었고 의사들은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하고 그 포악 무도한 압정에 항거하면서 적게는 1년, 많게는 5년까지 형을 살았다.
임할아버지는 이 처럼 서천지역 내 자주독립을 위해 벌인 3.1운동을 타 지역에 알리지 못하는게 항상 아쉽다. 늦게나마 1987년에 주민들과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마산면 신장리에 삼일운동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그나마 다행. 그러나 현재는 천안 독립기념관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만 그치고 있다. 그 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타 지역처럼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싶지만 동참해 주는 사람도 적고 외면 당하는 현실이다.
다행히 작년 화양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선도한 김인전선생 기념비건립의 뜻이 이장단에게 전해져 추진중이라 지하에 계신 의사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조금은 덜게 됐다고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임할아버지는 “애국심을 상실해 가는 요즘 3.1운동을 온고지신으로 삼아 나라사랑에 힘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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