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위패로 기억되는 당신 언제나 가슴에 남아있어요”
“낡은 위패로 기억되는 당신 언제나 가슴에 남아있어요”
  • 최현옥
  • 승인 2002.06.13 00:00
  • 호수 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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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군경 유족 박혜숙씨
오전 10시, 묵념 사이렌 소리가 전국을 뒤덮고 역사의 행간에 묻힌 채 낡은 위패 하나로만 기억되는 호국 충정은 조국의 별이 되었다 지난 6일 박혜숙씨(61·장항읍 옥남리)는 서천 충령사에서 백합보다 곱게 피어나는 분향 속에 남편의 공을 기리고 추모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녀는 고된 세월 속에 눈물조차 말랐지만 그리움은 심중에 남아 한이 됐다. 박씨는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미망인이 됐다. “그게 아마 군에 간지 1년만이었을 거예요. 참 법 없이도 살 분인데 하늘이 무너지는…” 이제는 담담해졌다는 박씨는 숱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남편의 말이 나오자 잇지 못한다. 휴가를 나와 둘째까지 보고 갔던 남편이 화장된 채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진다. 그녀는 결혼한지 2년여만에 남편의 사랑을 채 받기도 전 사별하게 되면서 시부모와 형제자매, 어린 두 자식을 키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움에 젖어있을 시간적 여유도 없이 낮에는 농사일로 밤에는 모시를 삼으며 삶의 애환을 달랬다. 그녀의 시어머니(윤영녀·88)는 완고한 성격이었다. “고초 당초보다 쓰다는 게 시집살이라 생각하며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봉사 3년으로 살았다”는 박씨는 어머니 말에 항상 순종하며 인내의 삶을 살아왔다. 그녀의 효심은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면서 77년 서림단위농협에서 주최한 농민축제에서 고부상을 받았다. 그렇게 당당하셨던 시어머니는 3년전 뇌경색으로 풍을 맞아 쓰러지고 이제는 종이 호랑이처럼 늙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오히려 죄송함과 안쓰러움이 큰 박씨는 그런 모습만으로도 오래만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박씨는 자녀들이 부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마음에 걸린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보지 못해서인지 다행히 아이들은 아버지를 찾는 것이 적었지만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을 보면 더 마음에 걸렸다. 현재 그녀의 집안은 위로 시어머니와 아래에 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 4대가 모여 산다. 그래서 중간자적 입장에서 박씨의 조율이 중요한데 며느리 윤씨는 어머니를 보면 성인을 보는 듯 하다며 자랑에 침이 마른다. 윗물이 맑기에 아랫물도 맑다는 말처럼 그녀의 모습은 며느리 윤인선씨(39)에게도 본이 되어 풍으로 쓰러진 시할머니를 모시는 일은 며느리가 도맡는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를 보고 더 마음이 끌렸다”는 윤씨는 어머니의 강인함과 인내를 본받으려 노력하며 남편보다 어머니를 더 의지하며 살아간단다. 오늘날 우리가 눈부신 번영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위국 충정의 애국심이 밑거름 됐기 때문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 부디 호국 보훈의 달이 일회성 행사나 유족들에게 보상금 지급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가족을 잃고 수많은 세월을 살아온 분들을 생각하며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겨 나라사랑과 국민화합의 큰 뜻을 다짐해 보는 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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