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 그리고 묵향이 묻어나는 삶
흙내음 그리고 묵향이 묻어나는 삶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6.11.03 00:00
  • 호수 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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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순 할머니“내 나이 여든둘, 그래도 배운다”

10월 30일, 기벌포예술제가 열리는 서천군민회관 소강당을 찾았다. 묵직한 먹내음과 함께 웃음소리가 흐른다. 서림연서회(회장 조항순)가 여섯 번째‘서림연서회전’ 사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림연서회는 1999년 서천도서관에서 마련한 ‘서예 초급반’에서 처음 만났다. 그중 11명이 함께해오고 있어 그동안 각종대회 입선·특선작과 함께 다양한 필체를 선보인 작품 60여 점을 전시했다. 이들을 가르치는 이는 전영하(42세) 선생, 현재 보령시에 거주하지만 장항읍 출신이며 원광대에 출강하면서, 틈틈히 보령시 주산면사무소에 마련된 공간에서 주민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배움의 정을 잊지 못해 매주 주산까지 오가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서림연서회 회원들이다. 회원 중에는 대전으로 이사 갔지만 잊지 않고 찾아오는 권순자 씨, 팔순이 넘은 노금순 할머니를 비롯해 분주한 살림 속에 짬을 낸 주부, 청일점 회원 김동윤 씨 등이 함께한다. 노금순 할머니(82세)는 몇 년전에도 화자가 된 인물, 기산면 내신산리에서 논·밭을 일구고 살아왔다. 노 할머니는 25세에 혼자돼 어려운 농촌살림을 꾸리며 아들딸을 훌륭하게 가르쳐냈다. 아들 이 모씨는 얼마 전까지 한국전력에서 일하다 퇴직 후 지금은 대전의 개인기업에서 일한다. 이들은 어머니의 작품전시회가 있으면 꼭 찾아와 기쁨을 나누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지난 1일 기자가 노 할머니의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텃밭에서 풋고추를 따로 포대에 따 담으며 고춧대를 뽑고 있었다. 그 옆에는 생강이며 김장 채소들이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안마당 가득한 감나무의 탐스런 감이 푸른 하늘을 붉게 수놓고 있다. 수돗가에는 한말이나 넘어 보이는 겉보리를 물에 담가놓고 있다. “매년 하기 힘드니까 한 2년 먹을라고, 아들이 쉬는 날 와서 털은 보리여”한다. 엿기름을 길러 고추장 된장도 담그고, 식혜도 해먹을 참이란다. 그뿐인가, 붉은 팥, 메주콩도 가을볕에 몸을 말리고 있다. 모두 손수 농사지은 것들이란다. 혼자서 얼마나 드실까마는 모두 자녀들을 생각해서 하는 일이겠다. 방에는 아들내외, 두 손주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이게 우리 손자들이여, 듬직허지”한다. 그리고 문방사우가 함께한다. “다른 회원들은 주산까지 댕기지만 나는 한달에 한번 초본이나 받으러 가지” 그래서 짬짬이 혼자 습작을 하고 있다. “밭농사를 짓느라니 글씨 쓸 새도 없네” 하지만, 얼마 후 있을 전시회 출품 준비 중이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혼자돼 이제 여든둘, 자녀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 혼자서 농사일 하며 사는 할머니, 얼마나 외로운 삶인가 싶겠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노금순 할머니시다. 자녀들에게 또 젊은 회원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건강하니 농사일하고, 77세에 시작한 서예가 이제는 작품을 남길 만큼 됐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있는 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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