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죄와 벌
  • 뉴스서천
  • 승인 2002.08.29 00:00
  • 호수 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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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MF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칭찬을 받았던 H그룹의 J모회장이 구속되었다.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고, 가족끼리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라서 충격이 컸다. 밤9시 TV 뉴스에서 구속장면을 보자마자 집사람이 전화하였다. 무슨 죄냐고 묻길래 ‘모르는 죄’라고 답했다. IMF위기 극복과정에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 배임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행위가 규제되지만 당시에는 이런 행위가 공공연히 저질러졌다.
며칠 후 서울구치소에 면회갔다. 의외로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간수들도 수범자라고 칭찬했다. 억울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 대신에, 사회에서는 ‘무슨 죄다’하고 수감자를 구분하지만 구치소 안에서는 모두가 한 식구 같다고 하였다. 밖에 있을 때에는 시간과 물자를 중요하게 느끼지 못했으나, 구치소에 들어오니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하루 한 번, 누가 올 지도 모르는 단7분간의 면회를 위해 몇 시간을 설레임 속에 보낸다고 했다. 단 1초도 아끼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인지 7분이 결코 짧지 않았다. 마지막 헤어질 때 “걱정하지 마”하고 오히려 그쪽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2>
대통령에 출마했던 J회장의 비서실장이 선거 후에 19개월 도피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검거된 후 그는 구치소가 오히려 더 편하다고 술회하였다. 도피생활 중에는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밤잠도 설치고 가족도 만날 수 없었으나, 구치소에 가니 따뜻한 밥도 주고 짧은 시간이나마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도피생활이 장기화되는데도 자기가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가족, 회사 등이 별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이 사회가 나를 점점 잊고, 나는 없어져도 하등의 문제가 없으며, 지금까지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환상에 불과했으며, 나는 숨만 쉴 뿐 죽은 자와 다름없다’고 느낄 때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구치소에 가니 ‘형기만 마치면 나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솟구쳐 새 삶을 찾았다고 한다.

<3>
어떤 사람이 700만원 사기혐의로 구속되었다. 유능하다는 변호사가 확실히 이기게 하려면 7,000만원을 내라고 했다. 확실히 이기게 해준다는 말 자체가 우스웠지만, 영수증을 발행해 줄 수 없다는 조건이 가관이었다. 700만원의 사기혐의를 피하기 위해 그것의 10배에 달하는 불법거래를 해야만 하는가?

<4>
일이 그르쳐지면 우리는 흔히 재수 없는 세상을 탓한다.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강변하거나 세상이 佰夷叔齊를 원하기에 이를 따른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안정된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법을 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지킬 때 달성된다. 법이 틀렸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법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아진 것 같다. ‘옳고 바른’ 법을 만드는데 매진해야 할 때다.

<재경부 경제홍보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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