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과 믿음이 최고지유”
“화합과 믿음이 최고지유”
  • 유승길 기자
  • 승인 2011.09.26 10:07
  • 호수 5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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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중말마을 지킴이 조문제씨

▲ 조문제씨
선비가 자리한 산세라는 문산면. 소재지인 신농리 입구에서 왼쪽으로 옛 시문중학교를 지나 저수지를 끼고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산 밑으로 옹기종기 농가가 늘어선 금복리에 들어선다.


문산면 금복리는 백제때 설림군에 속했다가 신라시대와 고려때는 서림군에 속했다. 조선 초 서천군에 소속되었었다. 조선 말에는 서천군 두산면의 지역으로 진북굴, 짐북굴 또는 금복(金福), 북계(北溪)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리(中里), 평전리(平田里), 유점리(鍮店里), 북계리(北溪里), 원동리(院洞里), 노오리(老五里)를 합하여 금복리(金福里)라 해서 서천군 문산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문산면 금복리는 1, 2, 3리로 나뉘어져 있다.
그중 금복2리는 금복리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해서 중리라고도 하고 중말이라고도 하는데, 쇳골, 중말, 원당으로 구성돼 있다. 쇳골은 중말 북쪽 끝 골짜기에 위치해 있으며, 옛날에 쇠가 많이 나온 골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원당은 마을 동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원당(院堂)이 있었던 마을이라 한다.
금복2리 마을회관 앞에는 ‘송암 조문제 공적 불망비’라는 비가 눈에 띈다. 현재 마을 이장으로 일하고 있는 조문제씨의 공덕비다.


공덕비나 공적비는 공덕(公德)을 칭송(稱頌)하여 후세(後世)에 길이 빛내기 위(爲)하여 세운 비이다.
따라서 사후에 세우는 게 관례다. 살아있는 사람의 공덕비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자손들이 성공하면 자신들의 돈을 들여 조상들의 공적을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정도가 고작인데 조문제씨의 공적비는 다르다. 당사자의 만류에도 주민들이 그것도 대부분이 조이장보다 나이가 든 윗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마련해 지난 2009년에 세워줬다. 그만큼 조 이장의 덕망이나 공을 마을 주민들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말렸지유, 나이두 젊구..., 마을 회관이 없어 창고에서 회의를 허는 것이 안타까워 땅을 조금 내놨구, 이장으로서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인디 공적비라니유”. 하지만 마을 어른들의 완강한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고 조 이장은 쑥스럽게 웃는다.
이렇게 세워진 공적비의 뒷면에는 조 이장의 공적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조문제씨는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함안 조여(趙旅) 어계(漁溪) 선생의 17대 손으로 공직에서 근무하던 조용남의 장자로 태어나 1997년 주민들의 추대로 이장에 임명됐으며 방치됐던 삼지적송에 대한 관리 및 제사 드리기, 경지정리사업, 마을내 하천공사, 상수도, 도로사업 등 주민들의 평안한 생활 터전 만들기 노력해 왔다. 이런 공로로 2000년 농림부장관표창을 받았으며 마을 회관을 지으면서 모자란 땅 120여 ㎡를 마을에 내놓았고 평소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등의 공적을 주민들이 영원토록 기려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주민들 모두가 농업에 종사하는 중말마을은 예전부터 예(禮)를 중시하고 주민들이 화합하는 살기 좋은 마을로 이름나 있다.
어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젊은이들은 서로 믿고 화합이 잘되는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마다 갈등으로 인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싸우던 6.25 전쟁때도 분란으로 인한 희생자가 한명도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가운데에는 마을의 젊은(?) 일꾼 조문제 이장이 있다.
조 이장의 나이는 올해 68세. 적지 않은 나이지만 고령자가 대부분인 중말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든다. 중말, 원당, 샛골을 합해 80여명의 주민중 65세 미만은 20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이 마을은 노인들이 많은 마을이지만 30여명의 노인회원들을 중심으로 정이 살아있는 화합의 마을, 아름답고 쾌적한 마을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매년 동절기인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낮 시간에 거의 마을회관에서 함께 생활한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매일 점심과 저녁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한다.
쌀과 반찬도 각 농가에서 내놓고 부녀회원들의 봉사로 식사를 즐긴다. 그래서 가정마다 난방비도 줄이고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의 걱정도 줄었다.
젊은이들도 조문제 이장과 구자길 새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등 단합이 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말마을을 포함한 금복리에는 귀농자가 늘고 있다.
몇 년전부터 귀농자가 5가구나 되고 꾸준히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이제는 들어와서 살만한 땅이 부족할 정도다.
조 이장의 출생지는 판교면이다. 문산초등학교와 판교중학교를 다녔다. 3남4녀중 장남으로 금복리 중말마을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루면서 성실하고 모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살아왔다.문산면 체육회 총무로 오랫동안 일했고 군체육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문산면 이장단 회장까지 맡고 있는 문산면의 살림꾼이다.


그는 마을 일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모범 가장이다. 슬하에 2남 2녀를 잘 키워 모두 결혼시켰고 모두 타지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6년여 동안 나들이를 못하는 어머니를 정성으로 뒷바라지하고 있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기도 하다.
“주민들과 화합하고 너그러움이 있으야쥬.”


조 이장은 일의 순서를 알아 꾸준히 기다리고 매사에 꼼꼼하게 처리하는 사람으로 주민들은 평하고 있다

▲ 금복2리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조문제 이장 공적 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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