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사람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사람
  • 뉴스서천
  • 승인 2002.01.31 00:00
  • 호수 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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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변한다. 쉬지 말고 정진하라’이것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절실하고 솔직한 심정이 되고 자기 마음 속 깊숙이 숨겨진 말을 하게 된다는데 아마 부처님께서도 그러셨던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명체가 생명체일 수 있다는 것부터가 변화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뿐더러 자연의 모든 것들, 생명을 갖지 않은 것들까지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현상이요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실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진리라고 믿던 것들조차도 쉽게 뒤집히고 마는 일이 더러 있는데 만물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할 것인가?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이 변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나서 쉬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할 일입니다. 그 길만이 유한한 목숨을 지닌 우리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합니다.
사람들 또한 변하는 세상을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오래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지나 이웃을 만나게 되면 사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전혀 딴 사람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결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주 많이 낯선 느낌, 섭섭한 느낌을 갖게도 합니다.
오직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본질인 세상.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 어찌 혼자서만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고집스러움이요 미련스러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허지만 나는 여기서 변하는 세상 한 가운데서도 변해서는 안될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형식적인 면, 표현의 문제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본질적인 문제는 바뀌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포장은 바뀔 수 있어도 내용만은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든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마음, 이웃이나 친구끼리 나누는 정다움이라든지 믿는 마음, 선배나 후배 혹은 스승이나 제자 사이의 올곧은 관계, 작은 것을 아끼고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지나치게 낯선 느낌, 섭섭한 마음, 이질감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변해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많이 손상된 경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충남 금산에 가면 고려말기의 충신이라 전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의 사당이 있습니다. 거기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귀와 함께 ‘지주중류(砥柱中流)’란 한문 글귀가 쓰여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백세청풍이야 오랜 세월을 두고서도(百世) 맑은 바람처럼 깨끗한 삶을 살자는(淸風) 권고일 테고, 지주중류란 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 한 가운데(中流) 우뚝 솟아있는 숫돌 모양의 돌이란(砥柱) 뜻이겠습니다.
문제는 지주중류란 말입니다.
여기엔 까다로운 옛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만 이 말씀의 진의는 흙탕물 흘러 넘치는 강물 같은 세상을 살더라도 커다란 돌덩이처럼 변함없이 꿋꿋이 자신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보자는 속내가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변하더라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사람들 또한 변하는 세상을 따라 변하게 마련입니다. 허지만 나는 때로 변하는 세상의 중심에서 변해서는 안될 우리들 정신의 덕목들을 떠올려봅니다.
사랑, 우정, 신의, 동정, 그리움, 존경, 희생, 봉사, 약속…
변하는 세상, 변하는 사람들. 허지만 나는 때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하며 그윽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을 그의 향내를 그리워 해 봅니다. 차라리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공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지주중류(砥柱中流) : 中國 河南省의 陜縣과 山西省의 平陸縣의 경계인 黃河 중류에 있는 柱狀(기둥 모양)의 돌을 가리키는 말. 위 부분이 편편하게 숫돌 같으며 激流 속에 우뚝 솟아 있음. 옛부터 지조 높은 선비나 충신을 기리는 비유의 말로 많이 사용되어 왔음.
<나태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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