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 - 이름 모를 들꽃이라 부르자
독자에세이 - 이름 모를 들꽃이라 부르자
  • 뉴스서천
  • 승인 2003.03.20 00:00
  • 호수 1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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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을 홀로 걷다 눈길이 잘 닿지 않는 어느 구석에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를 만나보자. 화사하지는 않지만 그 작은 몸짓 속에 창조주가 부여한 아름다움을 오로지 간직한 그 모습을 들여다보자. 찰나에 세상은 그와 나만이 마주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나는 그의 완전한 아름다움에 녹아 든다. 일상이 점점 각박해질수록 더욱 아쉬운 것이 그런 소박한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우리 서해병원에도 그런 아름다움을소중히 간직한 분들이 있다. 서천성당 레지오 마리아회 소속 회원 여덟 분이 그들이다. 우리 병원 입원환자들에게 이발도 해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밥 먹기조차 힘든 환자에게는 기꺼이 그들의 수저가 되어 식사를돕는다.
온갖 굳은 일이 닥쳐도 얼굴 한번 찡그리는 일 없는 항상 웃는 얼굴로 바쁜 손들을 빌려주는 그 분들의 봉사 활동은 1997년 4월부터 금년 3월까지 만 6년을 넘기면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월 1·3주째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동안 그분들의 손길을 거친 환자만 해도 2천 여명에 이른다. 티끌이 태산을 이룬다고 하더니 벌써 그렇게 되었다.
입원 환자는 병원 내에서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의 보호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외부 환경과 차단되는 일이 많다. 가족조차도 생계에 매이다 보니 환자를 자주 찾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 자연히 환자에게는 자원봉사자들의 부드러운 손길 뿐만 아니라 잠시 나누는 대화까지도 즐거울 뿐이다.
기분 좋은 환자가 우울한 환자보다 치유율이 높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다. 우리 병원의 자원봉사자들은 이처럼 환자에게 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그 분들의 손길은 은연중 각박해진 우리의 인심까지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사랑의 동맥경화에 걸린 사회에 사랑이 흐르도록 풀어줄 약손인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은 한사코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 분들을 충분히 뒷반침해주지 못한 처지이지만 너무 고마운 나머지 감히 내가 그분들을 지면에 소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분들은 사람의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더라도 온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름 모를 들꽃으로 남고 싶은 것 같다. 그 겸손한 들꽃들이 말없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는가’를 들려주고 있다.
<서해병원 원무과장 구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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