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복·구재순 노부부의 아름다운 회혼식
이형복·구재순 노부부의 아름다운 회혼식
  • 김장환 기자
  • 승인 2014.03.24 11:54
  • 호수 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랑과 희생의 삶으로 동생 일곱, 5남매 길러내
▲ 장상리 이형복·구재순 부부

지난 15일, 장항읍에 위치한 ‘명웨딩홀’에는 60여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아름답고 행복한 회혼식이 열렸다.


하얀 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백발신사 이형복씨(80·장상리)와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희생의 삶을 살아온 어머니 구재순씨(74)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자녀들이 회혼식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는 남편의 두 손을 잡고 손자들의 결혼식을 찾을 나이에 하얀 면사포를 쓰자니 수줍은 봄 처녀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구재순씨의 마음 한편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꽃다운 열여덟 살에 꽃가마에 족두리도 쓰지 못한 채 장암리에서 장상리까지 걸어와 정화수 떠놓고 시집살이를 시작했기에 머리 위에 쓰인 하얀 면사포는 구재순씨에게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 노부부가 오늘같이 행복한 날이 있기까지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6.25 직후, 누구나 가난하던 시절에 의료사고로 한쪽다리를 잃은 이형복씨는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아내 구재순씨부부는 시부모를 모시고 7명의 동생, 그리고 5남매를 훌륭히 키워낸 당사자들이다.
농번기에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해야 했고 농한기 때면 남의 집 구들장 수리에 가마니 짜기 등 억척같은 삶을 살았다.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려니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해도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 고사하고 동생들과 자식들이 커갈수록 부부의 어깨가 더 무겁게만 느껴졌으리라.
힘들고 지칠 때면 부뚜막에 홀로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던 구재순씨. 못난 남편을 만나 고생만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이형복씨가 더 열심히 살았던 이유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신을 돕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들 노부부가 희생의 삶을 살았기에 7명의 동생과 5남매 모두 사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다.
“60여년을 함께하며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소리 내어 부부싸움을 못해 봤다”며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삶을 탓하며 신세한탄 한 번 없던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라는 이형복씨의 말에 이들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의지하고 희생의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평생소원이던 하얀 면사포를 머리에 올리고 수줍어하던 구재순씨는 “남편과 함께 평생을 살아오며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남모르는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묵묵히 일하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준 기원이 아버지가 있었기에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며 “회혼식을 마련해준 자녀들, 자리를 함께 해주며 축하 해준 친척들과 마을 주민들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마서면 장상리에 살고 있는 이형복씨는 바쁜 농사일과 함께 이웃들을 위한 이발봉사를 해오다 이제는 큰아들의 농사일을 돕고 있고 구재순씨는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반찬봉사활동을 도우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아끼며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한편 이웃을 위해 나눔을 베풀 줄 아는 이들 노부부의 여생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원하며 다음 시를 떠올려 본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장상리 이형복·구재순 부부와 자녀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