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빼앗긴 풀꽃 이름 되찾자”
“일본에 빼앗긴 풀꽃 이름 되찾자”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5.08.15 14:39
  • 호수 77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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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아직도 데라우치 총독 시절광복70주년,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발간

 

▲ 봄까치꽃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개망초...

 

어떻게 해서 이런 저속한 이름들이 생겨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두고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이 이름들은 일본 학자에 의해 창씨 개명된 걸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이 식물의 한글 이름이 기록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조사,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들의 내력을 찾아냈다. 광복 70주년이 됐지만 우리 풀꽃들은 아직도 식민지 치하이다.

 

▲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이 펴낸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들’ 표지

큰개불알꽃은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로 마키노는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 犬陰囊)을 닮았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한다. 봄까치꽃이라는 예쁜 우리 이름이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마코노시리누구이(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한 이름. 마마코노시리누구이는 ‘의붓자식의 밑씻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의붓자식’이 ‘며느리’로 바뀌었다.
가시가 촘촘히 난 풀로 밑을 닦는다는 발상 자체가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개망초의 일본 이름은 히메조온. 일본어 ‘히메(姬)’는 어리고 가냘프며 귀여운 것을 뜻하므로 애기망초나 각시망초로 옮기는 것이 적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히메’가 붙은 이름은 대부분 ‘각시’나 ‘애기’로 번역된다. 그런데 개망초 등 일부 식물은 ‘히메’를 ‘개’로 번역해놓았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한반도의 식물을 채집, 조사하면서 그 가운데 상당수에 ‘조선’이나 ‘고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현재 조선이나 고려가 붙은 들꽃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물 이름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조선이나 고려 등을 빼고 옮겼기 때문이다. 봄을 대표하는 꽃인 개나리의 일본 이름은 조센렌교(チョウセンレンギョ)이다.

일본 말로 조선(朝鮮)을 뜻하는 조센(チョウセン)이 붙어 있으나, 번역자들은 ‘조선’ 대신 ‘개’를 붙여 개나리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개나리 외에도 개암나무, 개벚나무, 개비자나무 등이 ‘조선’이 ‘개’로 번역된 경우다. 저자는 ‘조선식물향명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조사해 2079종의 식물 중 99종에 달하는 식물 이름에서 ‘조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가 하면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 남은 일제 잔재도 심각하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이다. 이 소장에 따르면 이 가운데 일본 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은 모두 327종으로 무려 62퍼센트에 달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금강초롱의 학명이다. 금강초롱은 금강산 등 산지에서 자라는 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특산종. 하지만 금강초롱은 예전엔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을 붙인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렸다. 하나부사는 초대 일본 공사로, 일제의 조선 강점 발판을 마련했던 인물 중 하나다. 하나부사는 한반도 자연을 착취하기 위해 각종 자원을 조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나카이 다케노신을 비롯한 일본 식물학자들을 지원했다. 금강초롱은 이제는 더 이상 화방초라 불리지 않지만 학명(Hanabusaya asiatica Nakai)에는 여전히 하나부사의 이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조선화관, 또는 평양지모라 불리는 사내초(寺內草)는 악명 높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바쳐진 이름이다.  사내초는 현재 조선화관이나 평양지모로 불리고 있지만, 학명은 여전히 데라우치 총독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들’(인물과사상사)을 펴낸 이 소장은 “우리 겨레는 오래전부터 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해왔고 당연히 오랫동안 불러온 우리 고유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 및 관련 기관은 이 문제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일부 학자들은 예전부터 써오던 이름은 바꾸면 안 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며, “이제라도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우리의 풀꽃에 우리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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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주 2019-01-15 07:55:24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