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탄핵 그 이후
■ 모시장터 / 탄핵 그 이후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7.02.22 17:48
  • 호수 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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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칼럼위원
거의 반년 가깝도록 나라가 시끄럽다. 시민들은 넉 달째 주말마다 광장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소리 높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마침 주말과 겹친 크리스마스와 한 해의 마지막 밤을 포함하여 인파는 한때 광화문에 모인 인원만 100만을 넘었다. 추위와 함께 주춤했던 광장의 인파는 입춘이 지나면서 다시 늘어났다. 50만이라고도 하고 70만이라고도 한다.

50만이라 쳐도 그 숫자는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시가행진을 할 때에는 너무 많은 인파가 한 무리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대열을 나누어 움직인다. 종로를 돌아 헌법재판소로, 신문로를 돌아 청와대 방향으로, 또는 남대문을 거쳐 명동으로…. 구호가 거칠망정 폭력이나 파괴나 그에 맞서는 최루탄 같은 건 없다.
이 평화로운 군중시위는 이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이집트에서, 미국에서, 말레이시아와 루마니아에서, 터키에서, 멕시코에서, 부당한 정부권력에 맞서는 군중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언론들은 서울의 촛불을 그 모범으로 비교해 거론하고 있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촛불행진은 성숙하고 민주적인 정치적 시위의 새로운 전범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만인의 평등권을 근거로 한 인권선언과 근대적 민주주의 시스템의 효시로 불리는 사건은 1789년 프랑스의 시민대혁명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평민들도 책을 읽고 산업혁명의 결과로 경제력과 경영능력을 가진 중산 시민층이 등장하고 있었다. 귀족보다 영리하고 부유하고 유능한 평민이 많아진 상황에서, 단지 세습 받은 권력의 권위만으로 백성을 다스리려던 귀족중심 왕정이 한계에 부닥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불행히도 황제와 귀족들은 세상이 변한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스스로 대중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단지 유능해진 시민계층을 억누르기 위해 정부의 재정실패를 비판하는 지식인들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고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저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정치범 수용소)이 가득 차게 되었을 때 마침내 시민들은 더 참지 못하고 시위를 일으켰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고 태어났다’는 선언을 앞세우고 거리로 행진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깨부수고 시민 개개인이 주인되는 민주공화정을 선포했다.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촛불은 230년 전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비견될 새로운 사건이 될 가능성도 있다. 21세기 들어 인류는 이전 산업시대에 맞는 의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로 진입해 들어왔다. 농어민들도 컴퓨터를 필수로 사용하고 과학과 물리학 교과서가 해마다 새로 쓰이는 이 격변의 시대에 정치라 해서 10년 20년 전의 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정치는 진화해가고 있으며, 십수년째 IT강국이라 불려온 대한민국이 그 선도적인 실험장이 되는 것 또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몇 가지 장애물과 과제는 있다. 이것은 우리가 넘어야 할 필연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첫째는 저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가부장적 권위로 왕을 위한 통치를 강행하려는 현실권력이고, 둘째는 이러한 권위에 맹종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저항하려는 구세대의 저항이다.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런 변화를 좌익과 우익의 문제로 해석해보려고 애쓰는 것도 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은 지구상의 인류가 공산주의자와 자본주의자로 나뉘어 싸워온 20세기의 프레임이 이미 90년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완전히 끝난 개념임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중국과 러시아와 금강산을 여행하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다니 답답한 일이다. 

지금 대통령 탄핵의 문제는 좌우나 영호남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정직과 부정부패의 문제일 뿐이다.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해답은 정직한 사실에 있다. 정직이야말로 좌나 우나 부자나 빈자,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절대선에 가깝다. 지금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시민의 촛불이나 태극기를 든 탄핵반대 투쟁보다도 바로 진실판단을 흐리게 하는 거짓뉴스와 거짓선전들이다. 못 믿겠으면 광장으로 직접 나와서 보면 된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기 양심에 따라 진실만을 판단해 보라.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나오느냐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우리도 정직한 대통령, 정직한 정부를 갖는 일이다. 정치는 이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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