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수치심과 자괴감에서 시작하자
■ 모시장터/수치심과 자괴감에서 시작하자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7.04.19 18:54
  • 호수 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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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칼럼위원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깊은 자괴감’ 운운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자기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하여 만들어준 것이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 출마를 결심했다 해도 여러 명의 지원자 중에 한 사람으로 선발된 것이니 자기 의사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가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국가적인 일대 파란이 일어나고 국가 경제가 망가지고 외교가 교란되고 사회가 어지러워졌다면 그 자괴감은 대통령 된 사람이 느낄 일이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놓은 국민 전체가 느껴야 할 감정이다. 2016년 한 해를 보내면서 국민들은 실로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경제상황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교역 상대국들과의 외교관계마저 위태롭게 되고 있으니 앞길조차 암담하다. 국민들은, 특히 아무 생각 없이 능력부족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은 ‘이런 꼴 보려고 투표를 했나 깊은 자괴감’을 느껴야 할 마땅할 것이다.

플라톤이 했다는 말을 되새겨 보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가져오는 가장 나쁜 대가는 가장 저급한 인간들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수준 낮은 인간들에게 대표권을 쥐어주지 않으려면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감시하며 견제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우리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존경받고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들이 기초의원이나 단체장 같은 대표가 되기도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여 놓아두고 보면 평소 목소리 크고 우격다짐으로 자기 뱃속이나 채우던 사람들이 그 대표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한다. 그걸 누구 때문이라 탓할 수 있을까. 적극적인 관심으로 적임자를 잘 고르고 책임 있게 투표하는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여 생기는 결과임을.   

그런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갖기를 귀찮아하는 데에는 사실 타당한 이유가 없지 않다. 정직하고 고상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그 세계가 아무래도 너무 복잡하고 더러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권모술수와 탈법 불법이 판치는 세계를 꼽으라면 바로 정치판을 첫손에 꼽을 수 있었다. 감투를 쓰고 권력을 쥐어보려고 아귀다툼 하는 인간들이 사람 같지 않게 보일 때도 많다. 그래서 ‘잘 해먹어봐라’하는 기분으로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은, 바로 그 때문에 결국 가장 수준 낮은 인간들이 권력을 쥐고 당신들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치욕으로 느끼지도 못한다면, 예를 들어 국정을 함부로 농단하고 개인 뱃속을 채우며, 국가나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해외로 빼돌려 스위스 비밀금고에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감춰놓고 국가경제가 망하거나 전쟁의 위험에 놓여도 상관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정치를 일삼는 인간이 나의 대통령이었구나 하는 걸 깨닫고도 분노를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움이나 부조리도 느끼지 못한다면, 플라톤의 경고쯤은 그저 이상론자의 혼잣말이나 다름없게 들리지 않을까.

우리가 2017년의 시대정신으로 ‘개혁’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바로 이 부끄러움과 자괴감, 그리고 안전한 미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개혁은 바꾸는 것이다. 바꾸되 제대로 바꿔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출마자들 가운데서 세상을 바꾸기에 적합한 이상적 인물을 찾지 못하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 가운데서 이상(理想)에 완벽히 부합한 인물을 찾는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최선을 못 찾겠거든 차선이라도 택하라.’

또 다시 지금 같은 자괴감과 후회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중에서도 그나마 가장 나은 인물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내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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