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중국 미세먼지 타령보다 급한 일
■모시장터 중국 미세먼지 타령보다 급한 일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7.05.31 18:31
  • 호수 8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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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독일 루르지방을 다녀왔다. 독일 최대의 공업단지로 유럽 최악의 대기오염으로 악명을 떨쳤던 지역이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공장을 문화인들의 창작공간으로 꾸며 개방한 루르지방은 파란 하늘 아래 나무가 가득해 바람이 신선했다. 두 세대 전에 끔찍했다. 루르지방을 떠난 바람은 스웨덴에 산성비를 뿌려 유적을 시커멓게 녹일 정도였다.

독일은 이웃 국가의 불만에 부담을 느꼈다. 물론 자국민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 공장은 물론이고 도로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대기오염을 감축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요즘 독일의 공업단지를 가면 공장 면적보다 넓은 녹지에 놀라게 된다. 나무보다 지붕이 낮아 굴뚝이 보이지 않으면 공업단지라는 걸 알기 어렵다. 맑은 날 하늘은 진하게 파랗다.

지난 3월 말, 우리 언론은 중국 발 미세먼지로 해마다 3만 명에 달하는 한국과 일본인이 조기 사망한다는 과학논문을 보도했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언론은 정부의 허술한 미세먼지 대책을 연일 질타했고, 한 환경단체는 중국 정부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중국도 놀란 걸까? 자국인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사한 중국 관영 언론은 중국인 94%는 한국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 한다고 즉각 보도했다. 한국의 오염 발생을 무시하고 중국만 탓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보도한 중국 언론의 내용을 우리 언론은 되받았고.

미세먼지의 발생을 놓고 경합하는 우리와 중국 언론의 자극적 태도는 시민들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걸 방해한다.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그 논문의 핵심은 한국과 일본의 3만 명이 공연히 죽는다는 폭로가 아니었다. 중국 미세먼지는 중국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지만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와 일본도 상당한 미세먼지를 공장과 화력발전소와 도로에서 내놓고 그로 인한 조기 사망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중국 과학자가 다수 참여한 논문은 다른 나라에서 소비할 물건을 만드느라 중국인의 희생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슬며시 강조했다.

2007년 미국의 한 기자가 중국산 물건을 거부하며 1년 동안 경험한 고충을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으로 전한 적 있다. 중국 물건을 회피하는 게 그리 어려운 모양인데,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무역 적자에 불만이 많다. 성폭행에 비유하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보복 으름장을 놓았지만, 경제학자들은 냉소적이다. 중국 압박이 오히려 미국 경제에 역풍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중국은 미국과 부자나라의 소비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걸까? 우리를 포함한 많은 국가가 중국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이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우리 환경단체는 중국 정부만 고발하지 않았다. 자국 관영언론의 여론조사에 임한 중국 네티즌들은 우리 환경단체가 한국 정부도 고발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이제 어느 나라나 미세먼지는 일상화되었다. 비와 바람이 없으면 예외가 없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국내 원인이 대략 40%를 차지하고 중국도 비슷하다고 관련 과학자는 주장한다.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른 미세먼지는 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옳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미적거린다. 유럽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발표와 달리 대책은 한가롭다. 중국도 비슷한 건가?

정부는 지난 4월 3일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미세먼지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세간의 냉소를 피하지 못했다. “경유차 생산과 운영 과정의 배출 기준을 강화하고 노후 경유차에 대해서는 수도권 진입을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지만 엄격한 통제 수단을 제시하지 않은 정책은 선언에 불과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노후 발전소를 과감하게 축소”하겠다면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추가는 여전히 허가한다. “주변국과의 환경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지만 자국의 대책에 진정성이 없다면 주변국도 냉소를 보일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농도를 향후 10년 내에 현재의 유럽 주요도시 수준까지 체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다시 선언했지만 감동은 없었다. 자동차 생산을 선도하는 독일의 의회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이 달린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보다 훨씬 초라하지 않던가. 북유럽의 국가들은 앞 다투어 독일 의회와 비슷한 조치를 예고하는데, 10년 뒤 우리 대기의 미세먼지는 유럽처럼 줄어들까? 중국은 경각심을 공유할까? 우리에게 미안해하기라도 할까? 독일처럼 자국인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서두를까?

독일 의회는 선언이었지만 북유럽 국가의 정부는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미세먼지와 지구 온난화 물질을 내놓는 내연기관이 도로를 달리는 시대는 머지않아 마감할 것으로 보이는데, 2030년은 멀지 않았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가능할 텐데, 우리는 디젤 자동차에 오염물질 저감장치 부착도 의무화하지 못한다. 유럽처럼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할 생각도 없다. 햇볕이 우리보다 약한 독일은 지난해 태양발전만으로 전기를 자급한 날이 많았건만 우리 정부는 시민의 안전보다 석탄발전과 핵발전 자본의 이익을 먼저 배려한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전기가 없으면 산업이 마비되고 실업자가 속출한다고? 구태로 꾀죄죄한 주장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되었다. 공기가 우리 60년대처럼 청량한 유럽을 보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라면 유럽은 각 급 학교에 휴교령이 내린다. 유럽에 전기가 없던가? 망했나? 그 바람에 실업자가 속출했다고? 미세먼지는 그 지역 노동자와 어린이의 생명부터 위협한다. 내일을 위기로 몰아넣는 건데, 미세먼지 규제를 미루면 자본도 국가도 궁극적으로 손해를 피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손실도 막대할 것이다. 그 점을 우리 정부가 진정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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