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딸의 고민
■모시장터- 딸의 고민
  • 칼럼위원 양선숙
  • 승인 2017.06.06 22:16
  • 호수 8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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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막내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잘 극복하는 아이다. 올해 공대 3학년인데 학과 공부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쉴 틈 없이 보내고 있다.

평상시처럼 안부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요즘 고민이 많아서 마음이 혼란스럽단다. 딸의 중요한 고민은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할지,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15년간 학교에서 공부만 했는데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단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이를 움츠리게 하는가 보다. 선후배와 동기들과의 친분과는 다른, 사회 초년생으로 감당해야 할 직장 조직과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이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한다. 또, 과연 취업대란의 한국사회에 자신이 일할 일자리는 있을까 염려가 된단다.

그래서 딸에게 “직장생활은 언젠가는 네가 접해야 할 세계이다. 대학원을 가더라도 몇 년 후에 똑같은 두려움이 기다린다. 그 두려움은 너 뿐만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갖는 두려움이니 피하지 말고 부딪쳐야 한다. 현실을 도피해서 머무는 대학원이 아니라, 전공분야를 더 깊게 연구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도전하는 곳이 대학원이다.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두려움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고등학생이 졸업을 하자마자 발령을 받아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사람인데 갑자기 신분이 달라져 어른이 되었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신비의 나라 오즈에 간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험난했다. 익숙하지 않은 행정 용어와 상명하달의 직장 문화에 주눅이 들어 실수를 반복하고,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눈물을 훔치며 부모님 계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사회란 어떤 곳인지 가르쳐주고, 잘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위축되어 기가 죽진 않았을 텐데.... 이십 여 년 전 나를 생각하니 나의 딸이 갖는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느껴졌다.

딸아이의 걱정스런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기보다 모두가 갖는 두려움이니 피하지 말고 당당히 부딪치라는 원론적인 말만 한 것이 미안하다. 이성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앞으로 기회될 때마다 딸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듣고 공감해주고, 딸이 갖고 있는 장점들, 남편과 나의 사회생활 이야기, 직장생활의 에티켓 등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인으로서 마음을 넓히는 시간을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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