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유공자 후손들 어떻게 살고 있나
■ 독립유공자 후손들 어떻게 살고 있나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7.08.16 17:17
  • 호수 8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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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뒤늦은 서훈, “다들 어렵게 살다 돌아가시고 이제 몇 안남았어”

▲ 독립유공자 김갑수 선생의 손자 김석중씨. 벽에 걸린 사진이 김갑수 선생이다.
서천의 독립유공자들은 1962년에 서훈된 월남 이상재 선생 외에는 매우 뒤늦게야 서훈이 이루어졌다. 김인전 선생도 1980년에야 독립장이 추서됐다. 서천에서 뿐만이 아니다. 광복 후 45년이 지난 1990년도에 와서야 뒤늦게 독립유공자들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고 서훈이 시작됐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되면 1대 후손에 한해 연금이 지급된다. 이처럼 뒤늦게 서훈이 돼 대부분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대부분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서천에는 모두 4명이 수권 대상으로 연금을 받고 있다. 훈격에 따라 100만원 안팎이다.

이들은 광복회 회원으로 매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다. 지난 11일 김갑수 선생의 손자로 한산 종지리에 살고 있는 김석중씨를 찾아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소식을 들었다.

“다들 어렵게 살다 돌아가시고 이제 몇 안 남았어. 예전에는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는데 버스로 갔는데 이젠 군청 직원 승용차 한 차로 가지”

현재 서천에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수권 대상인 사람은 모두 4명이다. 김석중씨 외에 홍주성 점령의 의병 출신 문석환의 아들 문규박씨, 마산 신장 3.1운동을 일으킨 박재엽의 아들 박석종씨, 그리고 종지리에 살고 있는 월남 선생의 손자 이은직씨다.

올해 93세인 문규박씨는 종천 도만리에서 혼자 살았는데 건강이 안 좋아 서울로 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대전에 살고 있는 박석종씨가 광복절 전날 한산 조카네(박찬묵 전 서천군체육회사무국장)로 와서 하루 묵고 우리랑 같이 광복절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

▲ 한산면 종지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갑수 선생 묘.
김석중씨는 올해 여든 하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장단에서는 ‘왕이장’으로 불린다 한다.

“이렇게 마을을 위해 봉사하며 살도록 건강이 허락해서 늘 감사해 하면서 살고 있지.”

올들어 마을 숙원사업 하나가 해결돼 그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동산리 유산사거리 부근 29번 국도변의 마을 진입로가 턱이 높아 사고 위험이 높고 불편했는데 국토관리청과 농어촌공사가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이장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해결이 안됐었다. 그러나 올해 서천군이 적극 나서며 공사가 곧 이루어질 예정이다.

김씨는 마을 일을 돌보는 한편,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교육 사업에도 진력했던 조부 김갑수 선생 등의 조상 묘역을 조성하고 이를 가꾸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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