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전두환의 5.18 역사 부정은 배은망덕
■ 모시장터 전두환의 5.18 역사 부정은 배은망덕
  • 칼럼위원 정해용
  • 승인 2017.08.23 17:40
  • 호수 8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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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요즘 자국 내에서 보수우익의 집단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신작 소설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중국인 사망자 수가 사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십만 명이라는 설도 있지요 사십만이든 십만이든 과연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 거기에는 삼촌이 포로의 목을 베어야 했던 이야기가 적혀 있었어. 말이 포로지, 군복을 입지도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어. 그냥 눈에 보이는 남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이 사건은 1937년 일본의 중국침략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난징대학살 사건에 관한 언급이다. 그해 7월 중국을 침공해 북경과 천진을 차례로 함락시킨 일본군은 여세를 몰아 상하이까지 집어삼킨 뒤, 중국 수도 난징(南京)으로 진격해 들어간다. 난징이 무너진 것은 12월 13일. 이 날부터 일본군에 의한 무자비한 인간사냥은 시작되었다. 사로잡거나 항복한 중국군 포로(6만여 명)들을 총검술 살상훈련 대상으로 삼아 찔러 죽이고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된 군중에게 석유를 뿌리고 기관총을 난사하였으며, 여자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겁탈한 후 살해했다. 수녀 비구니 임신부와 소녀들도 대상이 되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도 있었다고 한다. 1946년 전범재판에서 증거로 확인된 사망자 수만 12만9천명. 실제로는 30만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 이 사건을 ‘없었던 일’이라고 잡아떼 왔고,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만행의 과거를 덮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본 최고의 대중 작가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이 사건에 대해 생생한 언술로 인정한 것을 지금 일본의 우파 정부와 우익 시위대들은 ‘국가 반역행위’라며 맹렬히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진실을 말하는 것은 작가로서 당연한 의무라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아무리 입맛에 맞게 역사를 고치려고 해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이러한 과거로부터 벗어날 방법? 숨길 방법? 그런 건 없다. 있다면 ‘상대가 받아들일 만큼의 사죄’ 그 한 가지뿐이다.”

지난 1980년 5월 광주에 특공대를 투입해 무고한 시민들을 수백 명이나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이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다시 그 학살책임을 ‘북괴 간첩 탓’으로 떠넘기는 주장을 펴 회고록이 판매금지를 당했다.

망월동 묘지에 안장된 당시 희생자들의 주검이 생생히 증언하고, 아직도 수많은 그 날의 증인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이런 진실을 다시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려 하다니. 1998년 마침내 민주정부가 처음 들어섰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5.18 수괴들에 대한 보복 대신 인도적 관용으로 품어주었고, 전두환은 그 정부 내내 고개를 숙이고 국정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제 와서 그 전과를 부정하는 태도는 비열할 뿐만 아니라, 바로잡은 역사를 다시 흐트러뜨려 국민들 사이에 가치의 혼란을 일으키고 내분을 조장하는 반국가적 작태다. 죽을 목숨을 살려준 관용을 배은망덕으로 갚는 행위는 인간이 할 짓인가. 

80년 당시 광주 현장을 목숨 걸고 취재했던 독일인 기자의 이야기가 이 여름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수는 1천만을 돌파했다. 이 열화 같은 민심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 아닐까.

진실을 말하는 작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본의 소수 우파들을 보면 쓴웃음 밖에 안 나온다. 이 나라에도 전두환을 내세워 역사의 진실을 다시 뒤집어보려는 소수 우파들의 추태가 있다. 그들이 꽤 조직적으로 역사 조작을 시도해 왔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래봤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고,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크게 홀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속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진짜 바보는 죽을 때까지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大惑者 終身不解 大愚者 終身不靈. (<장자> 천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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