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폭행당한 가리왕산은 방치되는가
■ 모시장터 / 폭행당한 가리왕산은 방치되는가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8.04.04 18:03
  • 호수 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묘목 250그루로 뭉개진 산림 생태계가 복원될까? 묘목도 묘목 나름이고 생태계도 생태계 나름일 텐데, 알파인 할강 스키장을 위해 파헤친 가리왕산도 가능할까? 그도 10년 이내에?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당당했다. 그리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 전문가는 누굴까? 생태학자일까? 생태학자라면 가리왕산 복원을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어떤 나무인지 모르지만, 묘목 250그루로 너비 55미터, 길이 2850미터의 스키 슬로프 모두를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닐지 모른다. 표고차이가 800미터에 경사가 17도라는데, 설마. 인터뷰 당시 눈에 띈 슬로프 일부의 생태계를 간신히 복원할 수 있다면 몰라도, 묘목으로 10년 만에 회복되는 산림 생태계는 없다. 게다가 가리왕산은 정부가 지정한 산림유전자원 보전지역이 아닌가? 일개 생태학자가 하느님처럼 “10년 내에 복원되어라!”하고 영광을 언도할 지역이 아니다.

뉴스 인터뷰에 출연한 담당 관료는 어떤 이의 속내를 대신 전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의 주장 뒤에 숨은 이는 누구일까? 궁금한데, 관료에게 당당함을 선사한 그 전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부서에서 적잖은 연구비를 받았을까? 그렇더라도 학술적 뒷받침은 무척 약하다. 전문가의 여러 말 중, 듣고 싶은 내용만 기억하고 인터뷰에 나선 건 아닐까? 16개의 대형 보로 4대강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 어떤 생태학자도 있긴 있었지만.

식물 생태계에서 표토는 아주 중요하다. 온갖 뿌리가 안착하는 표토는 단순한 흙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에서 버섯의 포자, 수많은 거미와 곤충의 터전으로, 그 자체가 생태계다. 다채로운 생물의 서식공간이기에 크고 작은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기에 크고 작은 동물이 먹이를 찾으며 오랜 세월 배설물을 내려놓았다. 그 역사는 스키 역사와 비교할 수 없다. 인류가 아니라 생물권의 장구한 역사와 맥을 같이할지 모른다. 가리왕산이 특히 그렇다.

안정된 숲은 키 큰 나무만 울창하지 않다. 전문가들이 상층수라 하는 키 큰 나무가 한 그루라면 그 나무의 중간 정도의 나무, 주위 비슷한 크기의 나무들과 생존경쟁을 하며 한참 자라올라가는 중층의 나무들이 상층수보다 수십 배 많다고 한다. 그뿐인가. 바닥의 낮은 나무들은 훨씬 많다. 하층림이라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살아남을지 초식동물에게 뜯겨 사라질지 모르는 키 작은 나무들은 중상층림의 수백 배에 달할 거로 추산한다. 그런 나무들이 뿌리 내리는 표토에 싹이 트지 않은 씨앗은 나무보다 현저히 많을 것이고 미생물과 포자는 그 수와 종류가 무한할 게 틀림없다.

문명을 등에 지는 사람이 지구 표면에 발을 붙이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 정도의 개발은 불가피하다. 자연 생태계는 물론이고 근린공원에 시설물을 신축할 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그 지점의 표토를 따로 보관했다가 활용한다. 표토는 새로 심는 나무의 뿌리가 제대로 활착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토 활용은 오랜 관행이다. 독일 유학생이 많은 우리나라도 이제 녹지를 개발하기에 앞서 표토를 실효성 있게 보관하리라 믿었는데 아니란다. 근린공원도 아닌 가리왕산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환경단체는 어처구니없어한다.

환경올림픽을 지향한다고 우리 당국은 누차 천명했는데, 공사 일정이 촉박했던 걸까? 가리왕산 슬로프 부지의 표토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일부 지역은 표토를 떠놓았지만 보관이 부실해 활용할 수 없다고 한숨짓던 환경단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슬로프에서 표토는 아예 보관하지 않았다고 개탄한다. 그뿐이 아니다. 스키 슬로프 작업을 위한 도로는 6미터 정도로 충분하지만 그 3배나 넓게 파헤쳤다고 분개한다. 작업도로의 표토로 보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공사를 해놓고 환경올림픽을 참칭하도 무방한 걸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