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는 새 역사를  
■ 모시장터-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는 새 역사를  
  • 칼럼위원 정해용 시인
  • 승인 2018.05.02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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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하 ‘판문점선언’)은 분단 73년째인 한민족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이제라도 구체적 결실을 눈앞에 두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1990년 유럽에서 동독과 서독이 전격적인 통일을 이루었을 때,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로 쏠렸다.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은 남북한이 언제쯤 통일될까 하는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20년 뒤쯤이면 될 거라고 봤고, 어떤 사람은 그 정도로는 어림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당시 독일의 통일과정에서도 당사국인 동독과 서독 외에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2+4’와 같은 회담들을 지속했고, 통일을 바라는 세력과 바라지 않는 정치세력 사이에 팽팽한 긴장과 대립 과정도 나타났다. 서구자본주의 서독과 사회주의 동독이 하나가 된다면 통일독일은 어느 편의 동맹에 남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공산동독은 더 이상 국가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었고, 그 동독을 후견하는 소련은 경제적 곤란에 봉착해 있었다. 소련이 서독 정부의 보증을 받아 독일계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차관을 얻게 되자 반대하는 목소리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대내외의 여러 조건들이 동서독 통일을 더 이상 가로막을 수 없도록 작용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나 지금 세계는 한반도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북-미 회담이 무사히 성사된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교류 자유왕래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더 이상 경제적, 외교적 고립을 견디기 어려운 상태에 있으며,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고 중국도 북한이 국제사회서 고립상태를 벗어나 자립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성급한 ‘통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쟁 없는 한반도’에 반대할 나라는 더 이상 없는 듯하다. 
이렇게 여러 조건들이 갑자기 마련된 것은 놀라운 변화다. 대화가 중단됐던 11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남북 간에 다시 소통의 길이 열리자, 로마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적극적인 지지와 축하를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북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 내부에 남아있다. 그 숫자가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대략 10~15% 사이로 추정), 크게 아쉬운 일이다. 
그들이 반대하는 명분을 들어보면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북한을 믿을 수 없다. 이용만 당하는 게 아니냐” 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비핵화에 고분고분 응하겠느냐는 의심도 많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경제난 해결이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과제가 되어 있다. 국제적 고립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경제가 무너지면 체제도 위험해진다. 아무리 이기적인 정권이라 해도, 체제안정을 위해서는 핵보다 주민경제 회복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못할 리 없다. 흥정이란 서로 필요성과 아쉬움을 느낄 때 잘 성사되는 법이다. 게다가 북한은 남쪽뿐 아니라 미국 중국에도 공개리에 같은 약속을 하고 있다. 비핵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약속을 의심하며 시간 끌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상호협력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남과 북 모두에게 훨씬 이로운 시간이 되었다.

둘째 명분은 “북한에 돈을 퍼줘야 하느냐”는 주장인데, 이것은 너무 감상적이고 타성적인 걱정이다. 북한은 남북간 평화조약이 이뤄지고 국제적 경제제재가 해제된다면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우리는 지난 1963년 단 1억 달러 무상지원과 2억 달러 유상원조라는 헐값의 조건으로 일본의 전후보상 책임을 받아들였는데, 북한은 여태까지 그러한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 남한이 당시 보릿고개마다 굶어죽는 사람이 허다하던 형편에 1~3억 달러만으로도 극빈상태를 타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던 일을 감안하면, 현재 100억~200억 달러(한화 12조원 이상) 이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북한의 대일청구권은 그들의 경제난 타개를 단시일에 가능케 할 훌륭한 재원이 될 수 있다. 또 북한이 보유한 지하자원은 양과 질에서 세계적 수준이다. 우리가 북한에 단 한 푼이라도 거저 주는 것 없이 외국에서 사들이던 철광석 등 지하자원을 북으로부터 수입한다면 당장 상당한 규모의 교역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대북교류를 반대하는 것은 그 실정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의 공염불이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대체 한 민족 한 핏줄을 지니고 70년이나 으르렁대며 산 것만도 부끄러운데, 이제라도 손을 다시 맞잡게 된 것을 왜 그리도 반대하는지 그 심사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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