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독자에세이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뉴스서천
  • 승인 2003.10.10 00:00
  • 호수 1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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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을 설쳤다. 늦잠이라도 들어 약속을 지키지 못 할까봐서.
10월 4일 토요일 새벽 5시 40분. 서천 자원봉사 센터 앞.
어둠 속에서 한 분 한 분 차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20대에서 많게는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 이들은 나와 똑 같은 마음으로 자원 봉사자들이며 오늘 하루 함께 지낼 좋은 이웃임에 틀림없었다.
박노찬 사무장의 출석 체크로 오늘의 일과는 시작됐다. 내가 첫 번째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접수 번호도 1번이었다. 모두의 힘찬 대답을 보니 오늘은 일이 꼭 잘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여느 관광 버스와는 달리 침묵 속에서 아침해를 맞았고 차창으로 보이는 가을의 맑은 하늘빛은 나의 마음을 가을의 추억 속 어디론 가로 나를 멀리 데리고 떠나갔다.
4시간30분이나 지났을까? 어느덧 경남 마산 시청 앞에 도착했다. 멋들어진 건물들을 보는 순간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부잣집을 도우러 왔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강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번 매미는 해일을 일으켜 시청 바로 앞까지 물을 넘치게 한 모양이다. 낮은 지대는 물에 잠기고 전국 사망인원의 15%이상을 이곳에서 차지했으니 이곳은 수해 지역임이 분명하다.
한 기관장은 수해복구에 나선 우리에게 몇 번이고 고마움을 전하면서 서천에 와서 은혜를 갚는다고 약속하지만 수해복구의 은혜라면 굳이 갚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면장님이 약속을 지키려면 서천이 물난리가 나야하니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들은 뜨끈뜨끈한 아스팔트 도로에 모여 앉아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고 이 음식, 얼굴조차 보여 주지 않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라 생각하니 인간의 따뜻함을, 감사한 마음 더욱 더 했다.
마산 시청과 진전면 사무소를 통해 선하게 생긴 부부의 어느 농가에 들어왔다. 수백 평의 하우스의 구부러진 모습은 놀이 공원의 청룡열차를 연상케 하였으며 보기만 해도 매미의 위력과 농민의 슬픈 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듯이 시청 앞의 화려함 이면에 초라함을 보면서 우리는 신 앞에 무릎을 꿇을 밖에 없었다. 이 농가는 1년 내내 전문적으로 국화를 키워 서울 꽃시장과 일본으로 수출하여 소득을 올리며 이번 건물은 새로 짓고 준공검사 맡은 지 사흘이 못 되어 이런 불행을 맞았고 재정적 손해만 해도 억대가 넘는다 한다.
남자들은 구부러진 하우스의 나사를 하나씩 분해하는 일을 하였고 여자들은 하우스 덮었던 비닐을 걷고, 묶어 매립장까지 실어 보내는 일을 하였다 .워낙 많은 양이 때문에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국화를 꺾어 서울에 보낼 준비까지 서천 사람의 기질을 충분히 발휘했다. 최선을 다하는 서천 사람들은 참 멋쟁이다.
하기야 미남 기사 아저씨까지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정도였으니….
신의를 쉽게 저 버리고 내 이익을 차지하려는 각박한 사회와는 다른 인간의 순수함과 인간의 진실은 그래도 우리 곁에 남아 있었다. 60세가 넘는 왕 언니의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의 대명사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어느 노랫말처럼 그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모두들 내일처럼 열심히 돕는 모습은 절망에 빠진 농부의 기쁨이요, 희망일 것이다. 한가지 그 많은 양의 비닐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매립될지 마음이….
부디 우리의 작은 정성을 봐서라도 용기를 내시기 바라며 다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우리는 서천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봉사의 날을 기다리며.......
<최은경 비인면 성내리 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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