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농촌의 가을 스케치
■ 모시장터/농촌의 가을 스케치
  • 뉴스서천
  • 승인 2018.09.06 12:39
  • 호수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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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수 칼럼위원

올여름 살인적인 찜통더위 속에서 동네 어귀 정자나무 그늘에서 부채질하며 좌담을 나누던 어르신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사치품으로 여겼던 에어컨은 이제 농촌에도 필수품이 되었다.

그렇게 온실처럼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도 계절의 변화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듯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바람결에 살랑이고, 높고 푸른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춤을 추고, 낮게 날고 있는 잠자리와 풀벌레 울음소리는 가을임을 알리고 있다. 이제 이른 새벽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결이 다가와 온몸을 감싸며 약간 쌀쌀한 기미마저 느끼니 자연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번 숙연하게 한다.

필자는 가을이 오면 떠오르는 옛 추억이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초등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 가을은 학교에서 운동회와 소풍이 큰 행사였다.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운동회가 아닌 부모님들의 운동회도 되었으며, 소풍은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추억이었다. 간식거리가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엔 삶은 달걀과 밤, 그리고 약간의 과자와 적은 용돈이 전부였으나, 가을에 밤송이를 볼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 시절 추억은 비록 가난과 힘든 시절이었으나 마음만은 지금보다 풍성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여러 곳의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었고 치열한 경쟁도 적었으니 물질적으론 풍족하지 못했으나 마음만은 진정한 미래의 꿈을 품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가을이 오면 어느 사람이나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진다. 그것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이고 자연의 섭리가 사람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요즘 농촌의 가을은 썰렁한 계절처럼 느껴진다. 옛날처럼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가꾸어 가을에 풍성하게 거두는 농촌의 풍경은 이제 옛 추억인 것 같다.

농촌의 가구 수는 예전의 절반도 안 되고, 그나마 남은 가구는 젊어야 60대 중후반이며 대부분은 70~90대 노인이 마을을 지키고 있으니 농사라야 소일거리로 텃밭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한 동네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기계화를 갖춘 사람이다. 그러니 한 마을에 한 사람, 아님 두 동네에 한사람이 동네 농사를 다 짓는다. 그리하니 동네에서 아이들 보는 것은 자식들이나 다니러 와야 어린 손자를 구경할 수 있으나 그것도 요즘은 그리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아니 하니까?

매스컴에서는 고령화 사회니, 고령사회니 떠들고 있다. 농촌이든 도시든 그러한 현상은 똑같은 현상이지만 특히 지금의 농촌은 젊은 사람은 관두고 50대도 찾기 힘든 동네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런 현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정부와 정치인들이다. 10년 후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정책 아닌가? 그러고도 자기들이 잘한다고 서로 싸운다. 아마 정책을 잘 바꾸고, 잘 싸우는 정부는 우리나라가 으뜸일 것이다.

80년대 초중반에 가족계획 정책을 실행하고는 8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교를 우후죽순으로 늘리더니 2000년대부터는 학생들이 없다고 하고, 국민연금만큼 믿을만한 것이 없다더니 고령 사회로 접어드니, 연금 고갈이 앞당겨질 것을 염려해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고, 그때그때 땜질식 정책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한심할 따름이다. 하긴 이러한 정책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정부 정책 하나를 잘못 잡으면 그 피해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이고, 감당은 국민들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을이 오면 황금들녘이 물결치고, 뒤뜰의 과실나무에는 각기 다른 향기와 색채를 품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편안한 마음을 감싼다.

하지만, 현재 농촌의 마을은 저녁 8시만 넘으면 불 꺼진 어둠의 마을이 대부분이고, 60대도 청년층에 속하며 아이들의 지껄이는 음성은 옛 추억 속에 묻혔다. 농촌의 저녁을 지키는 것은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만이 동네 곳곳을 조용히 밝히고, 지나는 이 없는 농로 길엔,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만이 외롭게 가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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