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세 번째의 외로움
■ 모시장터-세 번째의 외로움
  • 칼럼위원 신웅순 중부대명예교수
  • 승인 2019.01.23 13:29
  • 호수 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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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생에는 세 번의 외로움이 찾아온다고 한다. 선택의 외로움, 빈 둥지의 외로움 그리고 독거의 외로움이다. 이십대 때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하는 선택의 기도 같은 외로움이요, 오륙십대 때는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불빛 같은 외로움이요, 팔구십대는 하나가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하는 촛불 같은 외로움이 그것이다.
  나는 이십대 때 선생을 했다. 장남으로서 집안 일을 돕고 동생들을 가르치기엔 선생만한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한테 해야 할 도리를 해야 했기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모든 장남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숙명같은 것이었다.
  나는 5년 동안 모든 임무를 마치고 선생을 그만두었다. 공부하고 싶어 그래서 다시 학업에 뛰어들었다. 살아가기 위해 중학교 선생을 했다. 학문을 하고 싶어 40대 초반에 다시 또 한 번의 선생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대학 교수가 되어 이십년 후 정년 퇴임을 했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선생, 중학교 선생, 대학교 교수 세 번의 외로운 선택의 시간이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세월 밖에 
버리고

불혹의 
기슭에 와
서럽게도
출렁이는

산녘을
떠나지 못하고
굵어지는 
이 빗방울
        - 내사랑은 4

  그리고 정년 즈음에 아이 둘을 시집보냈다. 이상한 일이다. 그 때는 아이를 다 여의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즈음에 와 문득 날아간 빈 둥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는 나는 아직 보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아직도 자식들이 떠나지 않은 것 같다. 자식과 부모 간의 천륜이 이런 것인가. 
  딸들에게 일이 있어 아내가 잠시 집을 비웠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다. 날 보고 독립하란다. 밥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찌개도 끓일 줄 알아야 하고 반찬도 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하기사 훗날 아이들이 애기를 낳아 기를 때면 아내는 집을 비울 날이 자주 있을 것이다. 그것을 미리 대비하라는 말일 것이다. 행동으로 실천해야하는데 아내가 집에 있는 한 독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아내는 지금 서서히 집을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서로를 위해서이다. 
  내 어머니, 아버지는 다 돌아가셨다. 장모님도 돌아가셨고 장인 어르신만 남았다. 나는 맏사위이다. 우리 집에서도 맏이요 처가에서도 맏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님을 모시고 먼 바닷가 같은 데로 나갔었다. 그 후 얼마동안 집 가까이에서 점심이라도 사드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조차 할 수 없다. 꺼져가는 촛불이다. 하기사 춘추 92세이시니 그럴 만도 하다. 머지않아 심지가 다 닳으면 순간 바람 없이도 툭 꺼질 것이다. 그 소실점까지 가는 기나긴 하늘 길은 비단 아버님만의 길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먼 우주의 별빛 같은 여행을 어찌 감당하고 계실 것인가? 우리가 세 번째로 겪어야할 마지막 외로움은 이렇게도 눈물겹고 춥고 혹독한 것이다. 남자가 먼저 가고 여자가 나중에 가는 것이 부부에게는 행운일 것이다. 남편은 운이 좋은 것이요 아내는 먼저 보낼 수 있어 안심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이 퇴임한 여교수가 갔다. 퇴임하고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갔다. 작년엔 후배가 가더니 올해 초는 동갑내기 교수가 갔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투지 않고들 간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여! 불평하지 마시라. 제발 고집 부리지 마시라. 다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럽고 사는 것도 외로운데 그리하시면 더더욱 서럽고 더더욱 외로워진다. 인생이 한 줌의 흙이라는 것을 수없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오지 않으셨는가.
  인생에 세 번의 외로움이 찾아온다는 것은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일 것이다. 세번째의 외로움은 인생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절호의 찬스이다. 육십이면 어떻고 칠십이면 어떠랴. 하고 싶은 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 육십이면 3, 40년이 남았고 칠십이면 2,30년이 남았고 팔십이면 1,20년이 남았다. 그야말로 건강만 잘 가꾼다면 이보다 더 좋은 황금기는 없다. 무엇이든지 새로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이 시기를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일단의 학문이 마무리되면 나는 어렸을 적 꿈이었던 그림을 그릴 것이다. 20여년은 너끈히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깊이와 넓이가 묻어나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만의 빛깔을 우려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겨울 하늘은 한없이 넓고 겨울 바다는 끝없이 출렁거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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