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애매한 계절
■ 모시장터 / 애매한 계절
  • 박자양 칼럼위원
  • 승인 2019.02.13 13:53
  • 호수 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자양 칼럼위원
박자양 칼럼위원

        보름이나 이르다. 경칩은 고사하고 입춘도 전인데 예년보다도 앞당겨 웅덩이 주변이 소란스럽다. 간만에 내린 겨울비 덕분에 다들 깨어난 모양이다. 겨울과 봄 사이 어정쩡한 이 계절에 산개구리 울음으로 산자락이 두런두런 잠을 떨어내고 있다. 긴 손끝을 뻗어 집안 깊숙이까지 들이밀던 햇살도 이제는 반도 못 미쳐 슬슬 달아나기 시작했다. 겨우내 들이던 햇빛 덕분에 집안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먼지가 너무도 선명해 게으름을 등에 업고 짐짓 못 본 척 돌아치곤 했어도, 계절이 달음질치는 만큼 이제 해가 손끝을 거두면 그 마저도 보이지 않게 될 텐데 싶으니 조급증이 도져 빗자루를 들었다. 순서가 이게 아니지 싶어 들었던 비를 내려놓고 먼지떨이개로 바꿔들고 집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다 뜬금없이 먼지가 무얼까 싶은 생각에 늘 그렇듯 상념놀음을 시작한다.

        지금 세대야 어디 상상이나 하겠나마는 옛 어머니들은 앉아 쉴 때에도 늘상 손에서 마른 걸레를 놓지 않고 수시로 이곳저곳을 닦곤 하셨다. 집이란 산 생명 같아서 사람 손길이 닿지 않으면 이내 추레해지고 만다. 그러니 한 동안 청소를 안 한 장소엔 응당 먼지란 놈이 쌓이게 마련이다. 눈에 뵈다 못 해 뭉쳐져 이 구석 저 구석을 뒹굴러 다니는 것들부터 온갖 틈바구니와 가구 머리에 기름때처럼 쌓여 한 번에 닦이지도 않는 때먼지들, 게다가 수시로 널려 다니는 빠진 머리카락 등등은 우리의 오감으로 즉시 감지 가능한 것들이다. 허나 먼지가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세간을 휘젓고 다니는 미세먼지 얘깃거리는 차치하고, 집안먼지의 대부분은 실상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유기물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청소 끝에 모은 먼지쓰레기에 불을 당겨 보면 생고기 굽는 냄새와 비슷한, 심지어는 구수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탄내로 우리 몸뚱아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온갖 알레르기와 몹시 친근한 중에 단연 으뜸인 먼지알레르기를 떠올리며 빗자루에서 먼지떨이개로 결국은 다시 십 수 년을 창고에 모셔뒀던 진공청소기로 도구를 바꿔 드디어 대청소를 시작한다. 한 시간 여를 온 집구석을 빨아대니 개운함과 함께 한 편으론 묘한 무엇이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올 즈음, 청소기소음에 짓눌려 마치 무성영화를 틀어 놓은 듯 텔레비전 화면엔 익숙한 모습들과 함께 달갑지 않은 자막이 스친다. 한미 방위비분담금이 어쩌구 미국이 내민 협상액보다 적게 저쩌구, 결론은 또 다시 몽땅 퍼주기로 했다는 말씀. 청소기 전원을 끄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 텔레비전 전원도 내려버린다. 순간 집안이 고요해지고 근자에 본 인디언의 글귀가 떠오른다. 한 환경보호협의회장에서 백인들은 왜가리를 보호하고 하와이에 있는 거위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런데 왜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려고는 하지 않는가!’라고 한 인디언은 반문했다. 보호란 행위의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선연히 구별하는, 더욱이 국가나 인종 간 관계에서는 우열을 규정짓는 몹시 주제 넘는 말이 아닐 수 없으니, 과연 왜가리나 거위들처럼 그 땅의 원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무도한 백인들의 보호를 받고자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하고자 한 주장은 보호가 아닌 평화적인 공생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걸 가져요라고 하는 것이 내가 줄게요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북미대륙 남서부지역 인디언 부족의 가르침엔 를 내세우지 않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이미 삶 가운데 스며있으니, 이 같은 고도의 정신세계를 향유하던 인디언의 말을 당시의 무도한 백인들이 과연 알아들었들까 싶은 의구심마저 든다.

        구들방의 아궁이 불쏘시개로 쓰려고 청소기필터에 갇힌 먼지덩이들을 꺼내어 휩쓸려 들어간 비닐이나 플라스틱 조각들은 분리수거통행을 시키고 불을 당긴다. 지글거리며 타들어가는 먼지덩이로부터 너울너울 온갖 상념이 떠오르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일순간 스러지더니 장작으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시원함이나 후련함 끝에도 가시지 않는 희미한 찌꺼기 같은 잔상들은 그냥 가져가기로 한다. 본시 청소란 각자의 깜냥대로 그 수준만큼 해내고 게서 만족하면 그만이다, 완벽한 청소란 없으므로. 그러니, 집처럼 머릿속도 굳이 대청소는 아니어도 가끔은 청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추위가 기세를 더하니 일찌감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산개구리들이 어찌하고 있을지 슬쩍 궁금해지는 애매한 계절인 만큼 일상을 다잡아 애매함에 맞서 보는 것도 해봄직한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