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 최현옥
  • 승인 2002.03.28 00:00
  • 호수 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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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 꿈 이룬 마흔 다섯 살 구재선 주부의 옹골진 삶
“아름다운 세상과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
그리고 시련도 내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그러기에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

“학부모님이세요? 학생들 따라 오지 마시고 저쪽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 이 학교 학생인데요”
와르르 20대 초반의 아이들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녀의 얼굴은 긴 겨울의 인고를 지나 피어난 동백꽃처럼 붉어졌다.
등교 첫 날부터 순탄치 못한 대학생활. 그러나 절대불변의 진리는 그녀가 군산대학교 사회행정복지학과 02학번 구재선(45·비인면 성내리·사진) 학생이라는 것.
“대학을 목표로 시작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새로 시작한지 6년 만에 얻은 영광이라 더 감회가 크다”는 구씨는 요즘 대학생활에 흠뻑 젖어 있다. 나이 차이와 시간에 쫓겨 동아리 활동이나 대학문화를 즐길 여유는 없지만 캠퍼스에 발을 디딜 때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집안 사정으로 진학이 어려워 시작한 공장생활은 배움의 길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당시 교복차림에 책가방을 든 아이들이 부러웠던 그녀는 친구들을 외면했다.
“책가방이 저에게는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몰라요. 자격지심이었는지 부러움을 넘어서 감히...” 고개를 저으며 구씨는 말을 잇지 못한다.
검정고시는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 학습지도에 어려움이 많아 시작한 공부였다. 당시 나이 서른아홉살. 처음 공부를 시작할 당시 가족들의 반대와 집안일 그리고 농사일을 겸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곧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와 교사가 되어 주었다. 찬호(18·대천고)는 고등과정 검정고시 준비 때 과학을 가르쳐 주었고 찬일(16·서천고)이는 대학입시 준비 과정에서 수학을 담당했다. 시어머니 역시 항상 묵묵히 부족한 며느리의 자리를 채워 주었다. 오랜만에 책을 보려니 기억력이 쇠퇴하고 암기력이 떨어져 어려움이 많았던 그녀의 공부 스타일은 보고 또 보고이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도시락도 잘 못 챙겨주고 자모회도 참석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대학진학 시 첫 걸림돌은 곧 대학에 진학하는 자녀 때문에 등록금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유제품 배달을 하는데 아침 4시부터 한 바탕 전쟁을 치른다. 과 선택할 때 역시 진로와 효용성에 염두를 두어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 속에서 노인복지에 관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사회복지과를 지원했다.
가족보다 오히려 주위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구씨. 그녀가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 얼마 전 국어 작문시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감동적인 글을 발표,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아름다운 세상과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 그리고 시련도 내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그러기에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녀의 만학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은 자신의 존귀성을 스스롤 알고 있으며 그 것을 가꾸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꿈꿔 왔던 책가방을 당당히 메고 책을 옆구리에 낀 그녀는 농촌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주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주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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