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 송우열 시민기자
  • 승인 2019.03.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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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조 주원장朱元璋맹자를 읽다가 임금이 신하를 풀이나 개미처럼 여긴다면 신하도 임금을 도적이나 원수처럼 볼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자 분기탱천 하여 말한다.<

이놈의 늙은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사지가 멀쩡할 것 같은가 장안의 책을 다 끌어다가 불태워버려라”<명사明史전당전錢唐傳 형부상서 전당錢唐어록>

<중략>

주원장이 다시 명하길, “오늘 이후의 과거시험은 일률적으로 간추린 맹자 책을 기준으로 한다청대문장가淸代文章家 전조망全祖望 길기정집鮚埼亭集 35잡저 변전상서쟁맹자사雜著辨錢尙書爭孟子事>

여기서 그 유명한 주원장의 朱元璋맹자절문孟子節文이 나왔다. 맹자는 모두260문장인데 그중 87문장을 삭제한 맹자절문을 만들어 과거시험 교재로 배포했던 것이다. 1372년 봄 첫 조회朝會 때 일이다.

어린 시절 구걸하러온 15세의 거지소년에게 10세 소녀 마수영馬秀英이 동냥과 함께 준 책이 맹자 양혜왕편이다. “평생 구걸만 할래? 공부해서 인생 바꿔라는 의미의 경책이다. 즉시 주원장은 공부했고 마수영과 결혼해서 평생 마수영만 사랑했다.

어려서 거지였던 주원장에게 있어서 맹자 책은 자신을 길러준 책이면서 버려야 할 책이었다. 맹자 양혜왕 편은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라는 신시기군가호臣弑其君可乎문장이 기록되어있는 섬뜩한 책이다. 맹자 책은 통치자에게는 뼈아픈 책이지만 범부에게는 한번쯤 꿈꿔볼만한 책이다.

공자와 맹자는 공부법이 달랐다. 공자와 맹자를 일러 오소야천五少也賤무서곡無書哭이라 한다. 공자는 어려서 가난했기에 먹고살기 위해서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했고<오소야천五少也賤> 맹자는 극성스런 엄마를 둔덕에 어린 시절 풍족했다. 다만 어려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통곡했다는 무서곡無書哭만 있을 뿐이다. 무서곡無書哭이라는 말은 고문관지 별지본 주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일생에 걸쳐서 성인 공자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친절도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다. 평생을 거침없는 말로서 일세를 풍미한 철인이다.

이렇게 성장한 맹자에게 성인 공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자신보다는 똑똑하지 않았다. 이게 맹자의 생각인데 그 생각의 기록 중 하나가 임금이 임금 노릇 못하면 모가지 싹뚝 잘라버려라이다. 여기서 임금 죽이는 일을 시해弑害가 아닌 이름 없는 사내놈 하나쯤 죽이는 주일부誅一夫라는 표현을 썼다.<孟子梁惠王章句下>

백성이 가장 귀하고<민위귀民爲貴> 사직은 그 다음이며<사직차지社稷次之> 군주는 가장 가볍다<군위경君爲輕. 孟子盡心章句下>”

맹자에게서 임금쯤은 네깟 것이정도도 못되는 깜냥도 아니라는 말이다. 맹자는 이뿐 아니라. 하늘조차도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제사에 쓸 짐승을 살진 것으로 마련하고<희생기성犧牲既成> 제사에 쓸 곡식을 깨끗한 것으로 마련해서<자성기결粢盛既潔> 제사를 때에 맞추어 지냈음에도<제사이시祭祀以時> 가뭄이 들고 홍수가 넘치면<연이한건수일然而旱乾水溢> 곧 사직을 바꿔라<즉변치사직則變置社稷.孟子盡心章句下14>”

여기서 사직을 바꾼다는 변치사직變置社稷은 신을 바꾼다는 말로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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