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04.24 20:25
  • 호수 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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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환경에서 공부 할 수는 있어도
구차하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중국 서진西晉의 시인 육기陸機는 할아버지가 소설 삼국지에서 유비劉備의 대군을 무찌른 오吳나라 맹장 육손陸遜으로 그의 둘째 아들이 육항이며 육기는 육항의 넷째 아들이다. 진서晉書 하충何充<何充.소설 삼국지 하진대장군의 손자 논어주석의 大家 하안何晏의 현손>의 전傳 에 의하면 육항이 살아있을 땐 오나라도 존재했지만<육항존칙오존陸抗存則吳存> 육항이 죽고 나니 오나라도 망했다<항망칙오망抗亡則吳亡>라고 기록한다.
육손陸孫 가家가 일국의 국가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명문가가 된 데에는 모두 가학비망기家學備忘記秘書덕분이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존학절구차尊學切苟且다. 요즘 말로 한다면 공부를 하면 구질구질한 삶은 끝나고 존귀해진다는 말인데 시작은 육항의 선대에게서 비롯된다.
육항의 아버지 육손은 어린 시절 부<구강군도위九江郡都尉 육준陸駿>와 조부<성문교위城門校尉 육우陸紆>를 모두 잃고 종조부從祖父 여강 태수를 지낸 육강<육손 할아버지 육우의 동생>의 손에서 자란다. 육강은 동생의 손자를 불쌍히 여겼으나 그럴수록 혹여라도 ‘아비 없이 자란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 이라는 소리가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제 아들과 손자들보다 더 혹독하게 공부를 시켰다. 이때 책상을 중심으로 앞쪽 벽에는 절구차切苟且 왼쪽 벽에는 높을존尊. 오른쪽 벽에는 배울학學을 써서 붙여놓고 장장 십년장좌불와절문十年長坐不臥切問을 했다.<장좌불와절문공부법은 귀곡자의 스승 호산葫霰의 공부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승 불필不必의 아버지 고승高僧 퇴옹 성철 스님이 십년 장좌불와로 입멸한 현존 역사에 유일이다>
세상과 절연하여 일어서지도 눕지도 아니해 가면서까지 공부마음을 다져 마침내 15세가 이르니 천하에 모르는 문장이 없게 되어 16세에 등과登科를 했다고 전한다<.오서吳書 육손전陸遜傳> 실제로 그는 삼국지에서 유일하게 제갈공명의 팔진도 진법을 깨뜨린 초유의 인물이다. 이 일로 제갈공명 왈, “오나라에 이렇게 까지 공부를 많이 한 인물이 있었던가”라며 자신의 조카 제갈각<제갈공명의 형 제갈근의 아들>으로 하여금 육손에 대해 묻기도 했다.
이를 기준삼아 자식을 길러낸 여인이 있었으니 퇴계 모친이다. 존학尊學이란 말의 시작은 경敬인데 퇴계의 인생관 또한 경敬이다. 퇴계의 경敬은 퇴계의 모친 춘천 박씨에서 비롯되는데 그녀가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 읽었다는 책이 육손전이라 전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의 교육은 엄마의 지적 수준에 의해서 좌우된다. 퇴계 학문의 시始와 종終을 이루는 단 할 글자를 꼽으라면 단연 경敬이 으뜸이다. 경敬이란 글자의 자구적 해석은 풀초艹/쌀포몸勹/작은입구口/글월문.칠복攵/으로 설문해자의 원자가 구苟다. 구苟에 대한 경책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원도 한도 없이 공부해서 후회 없는 한평생을 살아보라는 말임에는 분명하다. 육기陸機는 오등론五等論을 통해 구苟를 설명하길 공부한 벼슬아치는 군주에게 한 가지를 간할 뿐인데<부학관일직간이夫學官一直諫耳> 군주는 구차한 마음이 없어야 하고<위상무구차지심爲上無苟且之心> 신하는 굳건하되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군하지교고지의群下知膠固之義> 
왕안석王安石은 한림학사翰林學士 때 신종神宗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필고난구차인순必顧亂苟且因循이라 했다. 공부 안한 재난을 돌아보란 말이다. 구차인순苟且因循에서 인순因循이란 공부를 게을리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안주하게 되어 결국은 헤이해져 썩어 문드러진다는 말이다. 철인 순자는 제나라 직하궁에서 구차苟且에 투생偸生을 더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 장차 닥칠 재앙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금부투생천지지속今夫偸生淺知之屬>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인지 조차도 모른다”<증비이부지치야曾比而不知痴也. 荀子卷32榮辱>
남송南宋 광종光宗 14년 1187년에 주자의 제자 유자징劉子澄은 스승 주자의 가르침을 필사하여 ‘소학’이라 명한 책을 짓고는 왈. 구차불급지궁학苟且不及至躬學이라 했다. 공부를 많이 해서 구질구질한 삶이 내 몸에 이르는 것조차도 미치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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