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세상 따라잡기 /(5)더 로드 / 존 힐코트 감독
■ 영화로 세상 따라잡기 /(5)더 로드 / 존 힐코트 감독
  • 이창우 작가
  • 승인 2019.05.29 11:33
  • 호수 9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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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서 숨차도록 달리면 벗어날 수 있을까

‘청정 에너지’라는 달콤한 유혹

 

포스터
포스터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 1호기는 지난 10일 재가동을 위해 원자로의 출력을 조절하거나 정지하는 제어봉의 제어능력 측정시험 중 이상현상이 발생했죠. 인출 1분 만에 원자로 열 출력이 18%까지 치솟았지만 원자로 출력이 제한치인 5%를 넘으면 즉시 수동 정지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12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수동으로 멈추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즉각 뉴스에서 볼 수 없었다는 것도 심각한 일입니다. 신속하게 보도되어 국민의 안전을 도모할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원자력에 빠진 한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변화를 모색할 것 같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수습하거나 외면하거나. 그때는 이미 늦은 건 아닐지 원자력에 너무 의지하는 삶은 아닌지요.

고리 1호기는 지난 200730년이 애초의 설계수명이 종료됐으나 정부로부터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아 2017618일까지 수명이 10년 연장되었죠. 이 역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례로 추가될 정부의 규제 완화규제개혁이라는 기업의 입장만을 위한 선택이었죠. 과연 더 큰 파이를 만든다는데 모두가 나누어 먹는 그 날이 있을까요?

파이 부스러기도 낙수효과라면 그렇겠지요.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의 밀집도가 세계 최고의 나라인 위험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전사고 시 아무도 책임질 필요 없는 시스템의 탓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추측은 그리 무리한 것도 아닙니다. 정부의 무책임과 핵발전소라 생각하지 못한 수천만의 생명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요.

 

모든 게 사라졌어. 시계는 새벽 117분에 멈췄다.

내 아이에게 이런 삶을 주기 싫어.”

그녀는 떠났다. 이따금 나는 아이에게 오래전 얘길 했다. 용기와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그걸 기억하는 게 어려움이다. 내가 아는 모든 건 아이가 나의 가망성이란 거다.

두 발이 남았구나. 너 한 발, 나 한 발.”

그걸 입에 넣고, 이렇게 향하게 해.”

총을 아이의 손에 쥐여 주고, 두 발이 남은 총으로 자살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들어 봐, 우린 얘길 해야 해. 그 사람들이 뒤에 있어,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게 다지. 나쁜 사람들을 경계해야 해. 우린 단지 불씨를 옮기는 거야.”

무슨 불씨요?”

네 마음 속의 불씨.”

 

영화 <The Road>2010년 개봉한 존 힐코트 감독 작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알아차릴 수 없는 그 순간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인류에게 닥친 재앙이 어떤 원인으로 하루아침에 폭발과 암흑으로 변해버렸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원인을 상상하는 일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으로 진행 중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더군요.

어차피 돈이 많다면 당신은 괜찮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 다른 행성이라도 갈 무언가를 마련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그것 또한 가능하진 않겠지요. 돈이 없다면 지금부터 삶을 정리해 보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한국에 원전 사고가 난다면 피난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국민의 안전 따위는 뒷전인 정부를 모시고 있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지요. 돈이 없는 당신은 그 자리에 남은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돈이 있건 없건 비슷한 처지에 놓일 확률이 더 높긴 하겠군요. 물론 이 모든 것은 상상에서 나온 말이니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

국가는 당신을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죠. 다행인가요? 바닷속이 아니라 그래도 땅 위에서 숨차도록 달리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수영 연습은 일단 미루시고 달리기 연습을 우선 시작하든지요. 원전 참사에서 살아남으려면 체력 단련에 힘써야 합니다. 이 영화 속의 황폐해진 길은 우리의 현실이 되겠지요.

안전하다는 원전에 대한 우리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면 한 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원전산업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고, 고통에 신음하게 했습니다. 또한, 이 세계는 죽음의 땅으로 만든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들이 있었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토록 공부를 강조하는 한국사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무엇을 학습했을까요.

일본의 해안 지대는 원전 건설 입지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경고를 수없이 들었음에도 일본은 쓰나미와 지진이 겹쳐 일어났을 때의 전력 문제에 대비하지 않았답니다. 실제로 고령화된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 앞에서는 답이 없다는 거죠. 그곳을 피할 수밖에는 그 어떤 안전대책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원전산업이 한 기업이 하는 일이라면 투자할 주주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원전산업 배후에는 막대한 이권의 먹이사슬이 존재합니다. 엄청난 국가 보조금으로 허위와 은폐, 비밀과 낭비로 가득 찬 산업이기도 하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자력은 그 명칭부터 제대로 바꿔야죠. 핵 발전입니다.

강윤재 에너지 전환 부대표·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제안을 했죠. ·장기적으로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은 중단하고 수명이 다한 원자력 발전소는 차례대로 폐쇄하는 방식으로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는 철저한 수요 관리와 시스템 정비, 전력원의 다양화, 지역적 분산화 등을 제시했어요.

정부의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거죠. 현재 한국은 22기의 원전이 가동 중입니다. 11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 2029년까지 35기로 확대하는 전력수급 계획이 마련됐다는군요. 지난 정부의 원전 추진 레토릭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와 경제적이며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라는 점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원전 1기를 폐기하는 과정이 30년이 걸린다는 것은 알리지 않죠. 그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원전을 가동할 때보다 폐기할 때 더 큰 비용과 환경문제, 사람의 목숨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적으로 이 위험을 미래 세대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 거죠. 정부가 진행하는 에너지 수급정책 주목할 이유입니다.

정부는 전력 수급의 수혜자인 기업들이 당연히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그에 합당한 정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왜곡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중심에 역시 사람은 없었던 거죠. 영화 <더 로드>에서는 야만스럽게 변해가는 모든 것이 파괴된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 순간 인류에게 남은 것은 오직 본능이며 약육강식이 펼쳐지게 되는 거죠.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려는 마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지혜처럼 한국 사회의 불씨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인류애이며 이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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