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독서 경진대회 어머니부 최우수 수상작
■ 국민독서 경진대회 어머니부 최우수 수상작
  • 뉴스서천
  • 승인 2003.11.14 00:00
  • 호수 1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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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을 읽으며…
2003년 여름은 참으로 혹독했다.
사십대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음을 주변사람들 조차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증폭이 심한 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신앙과 근신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지적(知的) 충족이 고달 되었다고 대뇌이면서 그 충족을 위하여 책으로 눈이 갈 무렵 해묵은 책들로 채워진 책장 속의 먼지들도 나를 반기는 듯 했다.
바로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십대의 김 여사는 책을 서너권씩 가지고 출퇴근하는걸 바라보면 내심 부러웠는데... ...
먼지를 불어대며 책들의 제목을 하나 하나 짚어 가는데 눈에 들어오는 빛 바랜 책 한권. 바로 중국 명말(明末)의 환초도인(環初道人) 홍자성(洪自誠)의 어록(語錄)인 채근담(採根譚)이었다.
前集 225장과 後集 134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집에는 주로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생활신조에 대해서, 그리고 후집에는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즐거움에 말하고 있다.
‘채근담’이라는 책이름은 宋나라 학자 왕신민(往信民)의 “사람이 언제나 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속하게 변하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초지일관(初志一貫)이란 말이 어색할 정도로 중심을 지키기 어려우며 더욱이 정보와 광고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주체나 정체성을 견지해 나가는 일이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채근담 전집 35장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가기 어려운 곳에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아야 하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에서는 3분(三分)의 공을 사양하여 남에게 나눠주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양보하며, 어려운 일을 당하면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이득이 생기면 나눠주기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 갈 때마다 마음 속에 와 닿는 글들이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정말 편안해지며 머리를 맑게 하며 내가 처신해야할 방향이 정리가 된다.
문득 친구들이 생각난다. 차 한잔을 마시며 반나절을 보내도 불편하지 않으며 많은 것들을 소유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신에 차있고, 여유 있는 그 모습들이 훈훈한 정(情)으로 느껴오던 순간들이 채근담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채근담 전집 4장에는 “부귀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청렴결백하다고 하지만, 가까이 하고도 그 나쁜 폐단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청렴결백한 사람이다. 남을 모략하고 중상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고상한 인격자라고 하지만, 이 모략중상을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고상한 인격자”라고 말하고 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갈수록 자본주의 성향이 노골적으로 들어 나서 메마르고 각박하여 뒤돌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빨리빨리가 난무하며 목숨까지도 쉽게 포기해버리는 현 세태에 느림, 여유, 편안함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후집 59장에는 바쁜 때일수록 침착을 잃지 않고 냉정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일을 그르쳐 괴로워하는 일을 덜게 될 것이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의욕을 잃지 않고 더욱 분발한다면 언젠가는 드디어 일을 성취하여 참된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양의 “팡세”라고도 볼 수 있는 채근담은 예측할 수 없는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정화시켜 가며, 한 걸음 양보하며,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예지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고 있다고 감히 말하여 본다.
지은이 홍자성은 세속을 벗어나되 세속을 떠나지 말 것을 주장한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이 호탁할 때, 세상적 욕심에서 방황할 때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채근담과 같은 동양의 고전들을 음미하며 여유를 가져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이 서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의 맨 뒤에는 88년9월4일 조카와 외출하여 채근담을 샀는데 세 살 박이 조카가 그만 옷에다 오줌을 싸버리는 통에 어쩔 줄 몰라했던 상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 두어 달 후 살림밑천이라는 사랑하는 첫딸이 태어났다.
그 순간을 생각하며 편안한 여유를 가져본다.
시간은 흐른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사십대 중반을 잘 추수려 오는 시간들을 지혜롭게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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