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9.10.10 15:20
  • 호수 9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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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인류사에 오로지 공부만으로 성인聖人이 된 인물을 꼽으라면 공자가 으뜸이다. 이 사람을 본받아 공부해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공자 다음 성인이라는 의미의 아성亞聖 맹자이다.

공자는 일생을 각 나라의 군주들에게 벼슬을 구하기 위해 머리 숙이며 살았으나 정작 벼슬을 한 것은 노나라 중도 마을의 재를 지낸 것과 중앙 부처의 대사구를 지낸 3년 남짓이 전부이다. 아성 맹자는 공자 이름 앞에서 머리를 숙였으나 군주들에게 벼슬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이 점이 공자와는 달랐다.

공자와 맹자의 좋은 점만 본받아 공부한 인물이 있는데 또 다른 성인이란 이름의 차성次聖 순자이다. 순자의 일생의 목표는 공자와 맹자의 장점만 닮는 것이었다. 공자는 지독한 공부 꾼이다. 공자 왈 열 집이 살고 있는 마을에<자왈십실지읍子曰十室之邑> 반드시 충성과 믿음이 나와 같은 이가 있겠지만<필유충신여구자언必有忠信如丘者焉> 나만큼 공부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 論語 公冶長27>”라고 스스로 고백할 만치 공자는 공부에 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다.

공자의 공부법은 생각을 위주로 하는 사색보다는 성현의 책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이 더 좋은 공부라고 말한다. 공자 왈, “나는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오상종일불식吾嘗終日不食> 밤새도록 자지 않고<종야불침終夜不寢> 사색을 해 보았지만<이사以思> 유익함은 없었고<무익無益> 공부하는 것만 못했다.<불여학야不如學也. 논어위령공30>

공자는 매우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9세 이하의 어린이를 가르친 적도 있다. ‘동자현童子見이란 부분이 그 문장인데 호향에 사는 사람들은<호향互鄕> 더불어 하기가 어렵거늘<난여언難與言> 한 동자가 공자를 만나러 오니<동자현童子見> 제자들이 몹시 망설였다<문인혹門人惑>”

<논어 원문:자왈子曰 여기진야與其進也 불여기퇴야不與其退也 하심何甚 결기이진潔己以進 여기결야與其潔也 불보기왕야不保其往也>

주자는 이 원문의 배열이 잘못됐다고 하여 재배치했다공자께서 말씀하시길<자왈子曰사람이<> 몸을 깨끗이 하고 찾아와 배우려 할 때에는<결기이진潔己以進> 몸을 깨끗이 한 것을 인정할 뿐이요<여기결야與其潔也> 그 지난날의 잘못을 탓할 수 없으며<불보기왕야不保其往也> 그 찾아옴을 인정할 뿐이요<여기진야與其進也> 물러간 뒤에 잘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불여기퇴야不與其退也> 어찌<> 심하게 할 것이 있겠는가<하심何甚. 論語述而31>

이때를 경험으로 훗날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는 가르치기 어렵다<유여자여소인唯女子與小人 위난양야爲難養也>라고 고백한다. 이 문장은 조선시대 어린이가 공부 많이해야 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문장이 됐는데 율곡의 경우 13세 때 사마지司馬試 진사초시에 합격했고 퇴계의 경우는 12세 때 친형 기준으로 둘째형 이해<배다른 형까지 합치면 넷째 형에 해당 됨>와 함께 숙부 송재에게 논어를 주석까지 외운다. 퇴계의 문도 서애는 16세 때 진사시에 합격을 했으니 어린 시절 공부를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십년지학일등과十年之學一登科라 했다. 이 말은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 말과 결을 같이 하는데 어린 나이에 등과하는 것은 가장 불행 한 일이니 10년을 공부했으면 등과해서 벼슬에 나갈 것이 아니라 그간 공부한 것을 검증받으라는 말이다. 옛사람은 해제지동 나이<3-4>가 지난 5세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15세가 되면 1차 검증받는데 공자의 15지우학志于學을 기준하기 때문이다.

양정견楊定見은 이 부분에서 달리 해석을 하는데 충의수호전서忠義水滸傳書에서 이르기를 영웅은 공부하지 않는다는 영웅불회독시서英雄不會讀詩書로 풀어냈다. 말은 맞는 말인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이기보다는 범부라는 사실이다. 범부는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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