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미민기자
  • 승인 2019.10.31 09:12
  • 호수 9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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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려거든 게으르지 말라(학지무권學之無倦)

삶이란 나를 끌고 온 시간의 발자국들로 채워진 존재이다. 중국 송나라의 대유 진서산(대학연의를 쓴 진덕수眞德秀를 말함)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손자들에게 공부에 대해 말한다.<진서산지론학업왈眞西山之論學業曰>

엉덩이를 붙이고 앉되 몸을 바르게 하며<정기착둔正己着臀>, 틈나는 대로 공부하되 외울 때까지 숙지해야 하나니<시습숙송時習熟誦>, 오늘보다 내일은 더 많이 공부하고<금일우명일익今日尤明日益> 공부 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독공지외불사篤工之外不思>”

공부 천재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 혁구습장革舊習章에서 말한다.

사람이 비록 공부에 뜻을 두고<인수유지어학人雖有志於學> 능히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이불능용왕직전而不能勇往直前>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이유소성취자以有所成就者> 옛날 습관이<구습舊習> 막아서서 방해하기 때문이다.<유이저패지야有以沮敗之也> 만약에 옛날의 못된 습관을 통렬히 끊어버리지 못한다면<약비려지통절若非勵志痛絶> 끝내 공부는 글렀다.<즉종무위학지지의則終無爲學之地矣>”

신은 천지창조의 문을 열고 인간은 그 외 모든 문을 연다. 거기에 단서가 있다. 공부를 해야 만이 그 외 모든 문을 열수가 있다는 거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높은 문턱일 수 있는 그런 곳도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냥 걷기만 하면 저절로 제가 알아서 낮아질 뿐만 아니라 손도 안대고도 열리는 그런 문턱일 수 있다. 공부는 그런 것이다. 공부는 닫힌 문을 쉽게 열 수 있는 도구와 같다.

소학집주 집설을 낸 진조陳祚는 공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집이 가난하면<가빈家貧> 공부해서 구하나니<원지이독공援之以篤工> 집이 가난함에도<유처가빈有處家貧>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다면<부독공이자不篤工而子> 그런 자녀를 둔 아비는 가슴치며 통곡할밖에.<치자통회置子痛悔>”

도대체 공부가 뭐기에 자녀가 공부 좀 못했기로소니 가슴을 치면 통곡한단 말인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거늘 요즘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공부타령이란 말인가라고.

물론 요즘 시대는 분명 돈과 권력만이 사회적으로 인정認定받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임은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교육과 교양을 포함하는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연대성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을 따져볼 때 돈과 권력의 인정 투쟁논의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공자도 논어 위령공편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학야學也 녹재기중의祿在其中矣라고. 공부를 하면 그 속에 돈이 있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는 다섯 명의 패자가 있는데 그중 으뜸인 제나라 환공이 하루는 나라 곳곳 백성의 삶을 직접 살펴보겠다며 순행을 하던 중 으리으리한 집안이 망해서 허물어진 담장을 보면서 말한다. 여기는 누구의 집인가. 마을에 사는 촌로가 답한다.

옛날 곽씨 후손의 집입니다

이렇게 큰 집안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쫄딱 망했단 말인가?”

그 곽 씨는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 안하는 것을 몹시 미워해서<>망했습니다

그러자 환공은 혼자 말로 중얼거린다. 공부를 좋아해서 집안이 망했다고... 괴이한 일이구나... 궁궐로 돌아온 제 환공은 재상 관중을 불러 순행 중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 어떤 마을에 공부를 좋아해서 망했다는 집안을 본 적 있는데 이게 말이나 될법한 소린가. 공부를 좋아했는데 어째서 집안이 망한단 말인가. 이에 관중이 답한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곽 씨라는 사람은 공부를 입으로만 좋아했을 뿐 몸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임금이신 환공께서도 입으로만 백성을 사랑한다고 하고 몸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곽 씨와 같을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군역곽씨君亦郭氏. 이것을 주자의 제자 유자징은 그의 문도들에게 공부하지 않으면 너 또한 곽 씨다라는 뜻의 이역곽씨爾亦郭氏라고 했다. 운이 없는데다가 능력마저 없다. 거기다가 집까지 가난하다면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한다. 배우려거든 게으르지 말라<학지무권學之無倦> 공부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어라<학지이명學之以命> 진조陳祚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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