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환관정치
■ 모시장터 / 환관정치
  • 한완석 칼럼위원
  • 승인 2019.11.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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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이란 흔히 내시라고 불리는 역사 속 존재이다. 임금의 명령을 승정원에 전달하는 일부터 궁궐의 창고관리, 잡무처리, 심부름, 청소 등 궁궐 안에서 생활하는 왕과 왕실 사람들의 사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을 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나 권력이 깊이 관여했던 중요한 존재였다. 신하보다 임금과 친밀하였으며 왕조차도 환관들 없이는 궁궐의 생활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환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한다. 그렇기에 왕조를 전복시키려는 자도 왕에게 아부하고 권력을 움켜쥐려는 자도 환관을 통해서 권세를 얻었다.

환관은 고려시대부터 생겨났다. 고려를 지배한 원나라에 팔려가 부와 명예를 얻고 자기를 멸시한 고려에 보복을 일삼고, 원나라의 환관들과 결탁해 고려의 모리배와 자기 권력을 지키려는 대신들이 이를 이용해 권력을 움켜쥐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 조공에 바치고, 처녀들을 팔아먹고 심지어는 왕까지 핍박하는 등의 최악의 지경까지 이르렀다.

환관이 왕을 세우기도, 바꾸기도 했는데 고려시대의 도성기, 최세연, 이숙 등의 환관들은 권력을 쥐고 횡포를 일삼았으며 이들의 권세는 웬만한 재상에도 뒤지지 않았다.

환관과 대신들, 양반 등과의 권력관계에 이어진 조선시대 훈민정음 창제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면서 한자가 어려워 글을 읽을 수 없는 힘없는 조선의 백성들을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하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왕이 글자를 만들어주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배움과 한문, 학문, 장사, 노비 마저도 독식한 양반과 유생 그리고 사대부, 대신들, 사업가들의 반발과 반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성들이 글을 깨우쳐 법을 알고 소송을 하며, 정사에 관여를 하고, 실익을 판단하며, 시비를 가릴 줄 알게 되면 양반과 권력층, 사업가들은 백성의 고혈을 어찌 짜낼 수 있을 것인가. 자기들의 권력과 재산, 정책 등을 어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이 한글 창제를 목숨 걸고 반대한 이유일 것이다.

이들은 환관과 모리배와 결탁해 명나라로 하여금 한글창제를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했다. 조선의 모리배들은 명나라의 환관과 짜고 한글 창제에 나선 조선임금인 세종과 충신들 그리고 주조기술자들을 핍박하고, 모함해, 죽이고, 조선에 처녀와 어린 백성들과 기술공들을 공물로 팔아 먹는 아첨배와 권력가들이 조선왕조를 장악하니 조선이 아니 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들을 알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썩어빠진 대신들은 환관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며, “저들의 비위를 건들지 않아야 조선이 편하다.”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기들의 편안함만을 추구한 위정자들이며 정치권력이었다.

글자를 움켜쥐고, 지식을 움켜쥐고, 권력을 움켜쥔 탐욕스런 지배자들로부터 벗어나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힘을 기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한글창제의 근본이며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만들게 한 초석이었고,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주국민을 있게 한 위대한 역사였다. 현명한 왕과 충신들 그리고 백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글창제 반대와 권력, 정치, 언론개혁과 적폐세력, 친일세력 청산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맥상통할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권력과 정치의 독식을 위한 몸부림이 저 시대의 환관과 환관의 권력을 이용한 사대부와 대신들 그리고 양반들의 자기권력 지키기와 무엇이 다를까.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무한하다. 온 국민이 손잡고 동행하며, 이기심에서 벗어나 모두를 위하자는 커다란 메시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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