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귀촌 생활 1
■ 모시장터 귀촌 생활 1
  • 칼럼위원 한기수
  • 승인 2020.04.08 14:00
  • 호수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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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덜 깬 난 창문 너머로 보이는 4월의 세상을 바라본다.

어제의 풍경과 또 다르다. 오늘은 개나리꽃과 벚꽃이 더 화려하게, 더 많은 꽃망울을 터트려 잠에서 막 깬 나를 반긴다. 이곳의 풍경은 365일 매일 다르다. 아니 매일 다른 풍경은 도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곳은 서로 경쟁하며 남보다 더 빨리, 더 높게 가려고 서로 미워하는 그런 치열한 풍경은 없다. 이곳의 경쟁이라 하면 오직 나에게 잘 보이려 서로 앞다퉈 새롭게 돋는 봄의 새싹과 4월의 꽃잎뿐이다. 치열한 삶을 내려놓고 나를 매일 반겨주는 꽃잎과 풀냄새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은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동네 가구 수라야 이제 뜨문뜨문 십여 가구밖에 남지 않아 온종일 집 앞길을 통과하는 사람도 10명 미만이고, 차량도 몇 대뿐이다. 평일엔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다. 오직 나의 대화 상대는 우리 집 주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소나무와 과실나무뿐이다.

40여 년 만에 도심에서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귀촌 생활 한지, 이제 만 2년이 되었다. 이곳의 현재 우리 집 가족은 경호를 담당하는 1년생 개 4마리와 매일 알을 낳아줘 나의 식탁에 영양을 책임지는 토종닭과 청계 닭, 14마리가 내 곁을 지킨다. 나의 아내는 3년 후를 약속하고 도심 집에서 생활하며 매일 화상 전화로 이곳의 안부를 묻곤 하며 주말에만 찾아온다.

난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자라서 이곳이 낯설진 않다. 하지만, 모르는 것과 부족한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수시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수정해도 끝이 없다. 어린 시절 느끼고,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너무 많다. 귀촌을 준비하는 동안부터 약 3~4년 밭작물을 심어 봤으나 80%는 실패했다. 어린 시절 봐온 경험만 믿고, 농사를 쉽게 생각한 나의 착오와 자신만 앞서고 서두른 내 과오가 크다. 특히 농작물은 기후에 민감하고, 나의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농사일이 쉬운 일이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올봄에는 키우기 수월한 작물로 다시 도전하려고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마을의 연령층은 대부분 60대 중 후반부터 90대까지 노인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60대 초반의 몇 명이 제일 젊은 청년층이다.

또한, 이곳의 저녁은 9시만 넘으면 창가로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은 거의 없다. 그러하니 길가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만이 길임을 알리고, 고라니와 이름 모를 산 짐승의 울음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며 놀이터가 된다.

어느 때는 책을 보다 저녁의 바람결을 쐬려고 밖으로 나오면 차가운 밤바람과 산 짐승의 울음소리가 맞닿아 내 몸엔 으스스한 전율을 느끼며 다시 서재로 들어온다.

그럴 때면 산골에서의 생활이 이른 새벽부터 해 질 무렵까지 싱그러운 느낌에 빠져 지내다가도, 어둠이 깔리면 혼자의 적막감이 밀려오곤 한다. 난 이곳 산골 마을에서 귀촌 생활을 하지만 일주일에 2회는 개인 사정상 내가 전에 지내던 도심을 늘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차량으로 복잡한 도심의 거리가 싫다. 시골에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몇 배의 시간으로 답답한 자동차 안의 공기를 마시며 보내야 한다. 또한, 2020년 초부터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유례없는 봄을 맞이했다. 도심의 도로는 여전히 복잡하지만, 거리와 공원에 사람의 발길은 뚝 끊겼고,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도 적막감만 감돈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엔 어김없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고, 서로의 대화도 이제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모습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사회의 경제 흐름은 거의 멈췄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둠의 그림자만이 맴돈다.

하지만 이곳 산골 마을의 산과 들에는 어김없이 봄임을 알리려 푸르른 새싹이 움트고, 동네 노인들의 손길은 다시 분주해져 논과 밭으로 바삐 움직인다. 봄의 황사가 봄비에 씻겨 나가고, 맑고 따뜻한 봄 햇살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이때 코로나19의 어두운 그림자도 봄 햇살에 씻겨 나가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도 여느 해와 같은 4월의 봄처럼 평온을 하루빨리 되찾아 2020년의 봄 향기가 다가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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