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재난이 묻는 것
■ 모시장터 / 재난이 묻는 것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0.05.01 11:16
  • 호수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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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집에 불이 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가지고 나올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만약이 아닌 실제로, 살던 집에 불이 난 이후였다. 마침, 부모님은 결혼 이후 15년 만에 첫 영화 관람을 가신 날이었고, 또 마침, 다른 가족들도 집 안에만 있기는 어려운 화창한 일요일 오후였고, 어쩌다가, 마침 그날은 41일이었지.

집에 남아 있던 할아버지께서는 화제 초기부터 엘피지(LPG) 가스통에 꽂히셨다. 화마의 확장을 막기 위해 머리털을 그슬려 가면서까지 가스통만을 지키는 데에 온 힘을 다하셨고, 마침내 가스통을 부여안고 뜻을 이루셨다. 시집 안 간 고모는 집 밖으로 나가 온 동네에 불이야!”를 외쳤던가?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될 뿐이다. 특별한 역할없이 여기저기 서성거렸던 나는 사건이 다 진정되고 나서야 무얼 먼저 챙겼어야 돌아오시는 어머님, 아버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불이었고 다행히 잘 진화되어 저녁 때 모인 가까운 친지들은 재봉틀을 번쩍 안아 들고 나온 새색시의 괴력이나 불구덩이를 헤집고 들어가 간난아이를 구한 이야기들을 직접 겪은 일처럼 나누었다.

무엇을 들고 나와야 했을까? 지금이야 생각할 시간도 아껴가며 장판 밑에 포개놓은 지폐나 장롱 안에 쌓아 둔 금붙이부터 건사하겠지만, 중학생 즈음의 나는 딱부러지게 챙길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여러 날 고민했던 것 같다. 문구점 아닌 막 생기기 시작한 팬시점에서 사 모은 필기구, 아니면 길이 들어 손에 딱 붙기 시작한 야구 글러브, 또 아니면 그 아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일기장 등을 두고 무엇이 먼저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에 불에 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은 차고도 넘쳤다. 중학 국어, 중학 영어, 중학 수학 등 끝없이 조여오는 중학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궁상맞고 너저분한 모든 일상을 묻고 이제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밝혀도 등짝 맞기 딱 좋은 소리란 거, 잘 안다.

그 때와 하나도 다름없이 일상은 나날이 전쟁이면서 평온한 척 유지되지만 코로나19는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모니터 앞에서 출석을 하고 아직 한 번도 살을 맞대지 못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안쓰러운 것, 그 이상의 변화를 예고한다. 기후 위기 등 인간 앞에 닥친 총체적 재난의 전초전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버려 다음 세대로 가야 하는 것일까?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는 71일까지 밀 등 곡물 수출을 금지했다.”

주요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쌀 수출 전면 중단 이후 일부 수출을 허용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세계화의 물결이 꺾이고 지역화로 선회하는 변혁을 예고한다.”

실정을 가리기 위해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주도하는 세력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는 기사를 넘기면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겨 다음 세대에게 건네주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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