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7)
늙은 엄마(7)
  • 뉴스서천
  • 승인 2002.04.04 00:00
  • 호수 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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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내주셨다.
엄마에 대한 시를 한편씩 써오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버이날도 아닌데 이런 숙제를 낸다며불만스러워했지만 난 괜찮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무슨 말을 쓸까 생각했다. 새인이가 다가와 집에 가자고 말했을 때도 못 알아듣고 생각에 열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새인이는 아직도 기분이 안 좋은거냐고 물었지만 난 대답대신 살짝웃기만 했다.
집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시를 생각했다. 뿌연 유리창 너머로 터벅터벅 흙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시를 생각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무거운 짐을 안고 졸고 있는 아줌마를 보면서도 시를 생각했다. 아니 시보다는 엄마를 생각한 것 같다.
“민지야, 우리 집에서 같이 쓰자. 나는 정말 글쓰는게 어려워. 응?”
소매를 잡아끄는 새인이에게 오늘만은 집에 일찍 가봐야한다고 핑계를 댔다.
대문도 없는 집에 들어서며 “엄마?” 하고 부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손님 오는 밤에만 켜는 백열등 달린 기둥을 올려다보니 엄마와 내가 약속한 곳에 작은 열쇠가 걸려있다. 아마 급하게 어디를 다니러가셨나보다.
텅 빈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 놓는데 책상 위에 고구마가 있었다. 고구마는 따뜻하였다.
나는 서둘러 연필을 꺼낸 뒤 고구마를 덮어뒀던 누런 종이에 하루종일 생각한 시를 적기 시작했다.
생각이 달아나버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늙지 않은 엄마
이민지
우리 엄마 이마엔 주름이 많습니다.
구불구불 흐르는 시냇물 같습니다.
우리 엄마 눈가엔 주름이 많습니다.
점점점 아래로 퍼져가는 물결같습니다.
우리 엄마 입가엔 주름이 많습니다.
겨울 동안 창고에 넣어둔 마른 고구마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내일보다는 늙지 않으셨습니다.
시를 다 쓴다음 다시 깨끗한 종이에 옮겨적었다. 그리고 가만히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엄마의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웃을때 덩달아 크게 웃는 얼굴 주름들이 떠올랐다.
나는 시를 소중히 접어 가방에넣어두었다.
<계속>

<함께읽는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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