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 승인 2020.07.23 09:58
  • 호수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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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

송우영
송우영

정조正祖 임금의 자는 형운亨運이며 아호는 홍재弘齋이다. 어명御名<재위 때는 어명御名이라하고 사후에는 어휘御諱라 한다>은 산으로 셩으로 읽느냐 산으로 읽느냐로 논란이 있었던 이름이다.

중국에 강희자전이 있다면 조선에는 정조 이산의 전운옥편全韻玉篇이 있다. 고래로 공부한 사람들의 마지막 꿈은 사전을 편찬하는 일인데 이 말은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께서 외솔 최현배 선생께 한 말이라 전하는데 공부에서 사전은 필수불가결의 보서이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공부의 시작을 사전<옥편>으로 시작하는 이들이 종종 있곤 했다. 더욱이 문장을 구성할 때 성조를 따져 묻는 한문에 있어서 옥편공부는 모든 글 읽기와 글쓰기의 기초가 되기에 그 중요성이란 설명 자체가 사족일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전이란 개념보다는 자전, 혹은 옥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사전辭典의 사자는 사람의 말<人語. >이며 전은 옛 문헌에서 전거를 끌어왔다는 의미이니 사전이란 옛사람이 이미 사용한 말들을 단어로 묶어 여러 개의 뜻으로 풀이한 책이며, 자전字典의 자자는 단 하나의 글자만을 뜻하며 전은 전거에서 단 하나의 글자만을 발췌해 그 글자에 대해 뜻을 풀이한 책이고, 옥편玉篇은 고유명사로 중국 양나라 고야왕이 엮은 책으로 한자를 풀이해 놓은 漢字의 저금통과 같은 책으로 자전의 7할과 사전의 3할을 포함시켜 자전과 사전이 학자용이라면 옥편은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게 편찬된 책이다. 바로 이점이 정조가 옥편 편찬 작업을 할 때 평민에 더 가까운 서자출신 이덕무 같은 인물을 참여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백성의 눈높이에서 옥편을 만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군주로서의 백성을 향한 애틋함이 묻어있는 배려인 셈이다.

다만 여기 책임자로 있는 인물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보만재保晩齋 서명응徐命膺이 그다. 그는 어려서 옥편으로 공부해서 문리가 난 공부한 인물로 보만재保晩齋라는 그의 아호는 임금 정조가 직접 하사한 인물로 판서 약봉 서성의 5세손이며 영의정으로 있던 서명선徐命善이 그의 동생이다.

보만재의 어릴 적 공부 법은 어땠을까. 옥편으로 절을 공부하는 법인데 글자의 자원과 왜 이 글이 쓰였으며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가를 밝혀내는 공부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필자 사문의 사숙師叔 되시는 분이 명맥을 유지했다가 이제는 돌아가셔서 본격적인 옥편으로 공부하는 법은 끊긴 상태이다.

이런 공부법은 약봉 서성의 아버지인 서해<퇴계이황 문인>에서 비롯되는데 사주당 이씨 집안으로 이런 공부법이 전수됐고<별도의 지면을 통해 고찰 예정> 사주당 이씨가 이런 방식의 공부를 통해 외조카 빙허각 이씨에게 전수했으며 빙허각이씨는 자신의 아호만큼이나 여성이지만 성격만큼은 불같아서 여느 장부못지않았다 전하는데 15세에 남편 서유본徐有本과 결혼했는데 시할아버지가 보만재 서명응徐命膺이고 해동농서를 남긴 서호수徐浩修가 시아버지다.

빙허각이 시집올 당시 다섯 살 아래 시동생 서유구徐有榘가 있었는데 이를 직접 옥편공부 법으로 길러낸 인물이 빙허각 이씨이며 이를 토대로 해서 훗날 서유구는 임원경제지를 남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부이다. 남자로 태어났건 여성으로 태어났건 그건 인력으로 안된다. 문제는 어린 시절 집에서 공부를 얼마만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야말로 공부를 무진장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옛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말이다. 보만재 서명응徐命膺은 연암 박지원과 함께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서문을 쓴 인물이기도 한데 규장각 최고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는 이덕무에게 늘 궁금해했던 부분이 있었다 했는데 어려서 어떻게 공부했기에 도무지 모르는 게 없느냐가 그것이란다.

후일 이덕무는 규장각 검서관을 나온 뒤 백탑파白塔派 지인들과 한가로이 지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한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忽未思或者>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孰未思事執>: 정조는 이를 더 세련되게 표현했다. 인재는 때로는 신분과 무관하게 나오니 기이한 꽃이나 신기한 풀이 시골 구석의 더러운 도랑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정조 홍재전서 172권 일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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