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중용 23장, 함장축언 공부법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중용 23장, 함장축언 공부법
  • 송우영
  • 승인 2020.07.29 23:53
  • 호수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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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4세 된 허균은 26세 연배인 한강寒岡정 구鄭逑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다.

옛사람의 말에 빌려 간 책은 언제나 되돌려 주기는 더디고 더디다고 했지만 여기서 더디다는 말은 1년 혹은 2년 정도를 말하는 겁니다. 역사와 강목인 사강史綱을 빌려드린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으니 되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저도 벼슬할 뜻을 접고 강릉으로 돌아가 그 책이나 읽으면서 소일하렵니다.”

그러고는 글 말미에 감백敢白이라는 글자를 쓴다. 풀어보면 제발 부탁합니다라는 애원하는 말이다. 유만주의 흠영에 따르면 고래로 책을 빌려줄 때는 주일치酒一瓻하고 빌려 간 책을 되돌려 줄 때도 주일치酒一瓻한다. 곧 책을 빌려 줄 때는 술 한 병이요 빌린 책 갖다 줄 때도 술 한 병을 보답으로 보낸다는 말이다. 훗날 치가 바보라는 의미인 치로 와전되면서 세상에 가장 바보는 책을 빌려주는 이요 더 바보는 빌린 책을 갖다 주는 이다는 속어가 생겨난 연유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가장 박학다식하다는 평을 듣는 예학의 대학자 한강 정구는 어쩌다가 빌린 책을 10년씩이나 못 돌려줬을까. 한훤당 김굉필이 평생에 걸쳐 자녀들에게 가르쳤던 것 중 하나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이고 남에게 책 잡힐 일 하지말라는 것인데 그의 외종손인 한강 정구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터, 더구나 예학을 가르치는 대학자임에야.

그의 제자로 예송논쟁에서 우암 송시열에게 체이부정을 소리친 꼿꼿한 인물로는 평생을 방외지사로 있다가 늙은 나이에 관직에 오른 미수 허목이 있고. 제자이면서 조카사위 여헌 장현광이 있다. 북인의 거두 윤호전이 한강 정구의 제자인데 그의 아들이 어찌 주자만 옳고 나는 그르냐를 외치면서 우암과 맞서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논어주석의 1인자 백호 윤휴이다. 백호 윤휴의 논어 주를 저본으로 연구를 해서 논어고금주라는 불후의 명작을 낳은 다산 정약용의 사숙 또한 백호 윤휴였던 것이다. 고산 윤선도 또한 그의 마지막 문인이다.

이쯤에서 백호 윤휴의 논어 해석법을 한 대목 옮겨보면 이렇다.

구분廏焚 퇴조왈退朝曰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

논어 향당편 12문장에 나오는 이 문장에 대한 주자朱子의 정통적 해석은 마굿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조정에서 퇴근해 사람이 다쳤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모두 이를 따른다. 이를 백호 윤휴는 조금 달리해서 읽는다. “구분廏焚 퇴조왈退朝曰 상인호불傷人乎不 문마問馬마굿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조정에서 퇴근해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는가? <묻고는/그리고>말에 대해 물었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을 안으로 머금고, 말을 뱉지 않고 쌓아 두어 온축하라는 함장축언含章蓄言의 해석법인 셈이다. 이는 중용 23장의 공부법으로도 읽히는데 기차其次는 치곡致曲이니 곡능유성曲能有誠이니 성즉형誠則形하고 형즉저形則著하고 저즉명著則明하고 명즉동明則動하고 동즉변動則變하고 변즉화變則化니 유천하성성唯天下至誠이야 위능화爲能化니라.”

한문 문장에서 칙은 즉으로 읽는 것이 원칙으로 여기서 즉은 법칙 칙의 뜻보다는 으로 읽어야 한다.<成百曉懸吐대학중용주132> 이를 상선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풀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혀지고 밝혀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한수재 권상하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중용을 몇 번쯤 읽으셨는지요. 우암이 말했다. 글쎄 일일이 세어 볼 일이 없어서. 최근에 읽은 것만 말한다면 아마도 오백 번쯤은 될 거야. 그러자 한수재가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막 한 글자 가르침을 청한다면 어느 글자를 들겠습니까. 우암이 말한다. 그건 돈두팔<돼지해머리/여덟팔>이지 곧즉이 여섯 개 있는 문장으로 중용23장 치곡致曲장을 말한다. 공부를 하되 중용23장처럼 깊게 공부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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