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한 자는 남을 다스릴 수 있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한 자는 남을 다스릴 수 있다
  • 송우영
  • 승인 2020.09.04 07:42
  • 호수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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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의 4대조 진효공 영거량 때 재상 위나라 사람 상앙商鞅의 스승으로 알려진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사람 시교尸佼는 형명학가이면서도 유학에 대단히 밝은 자였다. 그가 유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206만여 자에 이르는 명저를 지었는데 곧 시자尸子제하의 책이 그것이다. 그 책 권권학편勸學篇 1에서 말한다.

배우는 데 게으르지 않음은<학불권學不倦>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요<소이치기야所以治己也>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음은<교불염敎不厭> 남을 다스리는 것이다<소이치인야所以治人也>”

쉽게 말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행위이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한 사람은 늘 이다. 중용14장은 이렇게 밝혔다.

윗자리에 있다 하여<재상위在上位> 아랫사람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며<불릉하不陵下> 아랫자리에 있다 하여<재하위在下位> 윗사람에게 매달리라는 것이 아니니<불원상不援上> 오직 공부로 몸을 바르게 할 뿐<정기이正己而> 남에게서 구하지 않으니<불구어인不求於人> 원망함이 없기가<즉무원則無怨>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하며<상불원천上不怨天>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않는다<하불우인下不尤人>”

쉽게 말해서 공부가 된 신하는 임금에게 굽신거리는 자가 아니며 비록 신하의 지위에 있으나 신하의 도리를 다할 뿐이며 군주로 하여금 군주의 도리를 다하도록 가르칠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군자는<군자君子> 평범하게 살면서도 천명을 기다리고<거이이사명居易以俟命> 소인은<소인小人> 위험한 일을 행하면서도 요행을 바란다.<행험이요행行險以徼幸> 공부가 모자라면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통에 모두가 괴롭다는 말이다. 특히 공부가 모자란 사람은 자신의 무지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위까지 올라가서는 결코 안된다.<불급불위不及不位>

주자가 그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글이 짧으니 학자를 꿈꾸지 말고 그렇다고 중앙 관료를 꿈꾸지도 말고 지방 하급 관리가 되어 제 분수껏 편한 여생을 살라며 해준 말이다. 대학 제3장에 나오는 공자가 새를 보면서 한탄했다는 말이 바로 이 대목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머물러야 할 곳이 숲인 줄 아는데 사람이 새보다 못해서 되겠는가.<시운詩云 민만황조緡蠻黃鳥 지우구우止于丘隅 자왈子曰 어지於止 지기소지知其所止 가이인이불여조호可以人而不如鳥乎> 뭘하든 그 시작은 공부라는 말이다.

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긴 시간 죽치고 앉아서 그야말로 미련스럽게 덤벼야 하는 것이 공부다. 약삭빠르면 공부하기 힘들다. 밥 한끼 먹었다고 살찌는 것이 아니듯이<일반불포비一飯不飽肥>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지식이 금새 자라는 것이 아니다.<일서불식장一書不識長> 길고 오래도록 고통의 시간들을 거친자만이<고고과시통苦考過時痛> 공부의 끝을 볼 수 있다.<상거학필업相距學畢業>

그 공부의 끝은 곧 다스림이다.<기학즉치인其學則治人> 이러한 견딤에 대한 쓰임을 괄골요독처법刮骨療毒處法이라 하는데 명의 화타가 명장 관우의 독화살 맞아 썪어들어가는 어깨를 고쳤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 흔히 괄골궤습刮骨跪習이라고도 하여 앉아서 공부하되 뼈가 터져나갈 만치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괄목상대의 고사 주인공이 된 손권의 막장 여몽이 이렇게 공부했다 전한다.<소설 삼국지 여몽전>

이러한 공부법의 유래는 질기고도 길다. 특히 가진 것없는 집안의 자녀들이 백척간두 절체절명의 자리에서 건곤일척의 바람을 잡아보겠다는 풍운지장風雲持掌의 꿈을 거머쥐기 위해서 마지막 시도한다는 벼랑 끝 공부다. 위나라 양혜왕도 이러한 공부로 권좌에 올랐고 양혜왕 때 재상 공숙좌의 12촌 조카뻘되는 상앙 또한 이러한 공부법으로 진나라 재상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스승 시교가 있었지만.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못할 짓도 없고 없는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할 짓도 없다. 못할 짓과 안할짓 사이에는 공부가 있음을 잊지말라.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공부빼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못해도 남자는 40살까지는 공부해야 한다. 그후 사십출사四十出仕다 조선 거유 미수 허목의 말이다.

<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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