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권 교장님! 잘 지내시나?”
“아니, 심 교장께서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남?”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듣고 싶고, 안부 인사를 전하려구.”
그는 당진에서 현직 교장으로 재직 중인 대학 동기이다. 5년 전에 당진 교육장을 역임하였을 정도로 교직 계에서는 잘 나가던 친구였다. 예전에는 해거리라도 서로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낸 지 3년이 넘은 것 같다.
“천안에 사는 김00 교장 알지? 지난 10월 말에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네.”
“아니, 그 친구가!”
“나하고는 대학 동기 이전에 고향 친구인데, 갑자기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래서 생각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중이네.”
사망한 대학 동기는 나에게도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제주도로 교직 발령 신청을 내서, 초임 교사 시절 2년 동안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낯선 타향에서 의지가지 없는 중에 서로 다독이면서 객지 설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 당시의 추억들이 생생하기만 한데,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전화 속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은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당분간 만남이 어려움을 안타까워하였다. 우리 나이 때가 되면 건강한 몸이 최고라면서 서로 건강을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만나자는 기약과 함께 안부 전화는 끝을 맺었다.
위 친구뿐이 아니다. 고향 친구들부터 학창 시절 동기들, 지인들과의 만남이 거의 단절되다 보니 안부 전화가 일상이 되었다. 거의 한결같이 서로 보고 싶다는 마음 전함과 건강을 잘 지키자는 당부의 내용이었다. 때로는 사업에 결정타를 받아서 상황이 몹시 어려운 지인의 소식을 들으면서, 함께 비통한 마음으로 젖어들기도 하였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는 만남의 기회를 뺏어갔지만, 우리들에게 만남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와중에 안부 전화는 반가움을 넘어 서로 간에 인연의 끈을 더욱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평소에 전화 걸기에 인색한 나도 지인에게서 전화가 오면, 서로 만났을 때 못지않게 반가운 마음이 가득하다.
지금 전 인류가 모두 상처를 입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공포로 인한 상처나 경제적 곤란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렇지만, 세상으로부터 두절되었다는 외로운 마음의 상처는 한결같다. 한쪽에서는 코로나 치료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이 내 곁에 다가오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적인 절망감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언젠가는 코로나 사태나 경제적 타격을 받은 과거는 웃음거리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마음속에 얹힌 그늘은 쉽게 걷어낼 수 없다. 그 그늘 속에 감춰진 상처에는 수많은 곰팡이가 피어나서 상처를 덧내게 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갉아먹고자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서로 간에 주고받는 안부 전화가 그 어떤 코로나 백신보다 효과 넘치는 치료제가 되리라 확신한다.
한 통의 안부 전화가 한아름의 꽃다발로 지인에게 안기게 되고, 나에게 그대로 한아름의 꽃다발이 안기는 행복을 선사해 준다는 것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