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은 소의 해, 칡소를 아십니까?
신축년은 소의 해, 칡소를 아십니까?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1.02.04 10:47
  • 호수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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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만 해도 이땅을 대표하던 소
▲안학3호분의 소그림
 ▲안학3호분의 소그림
▲칡소(뉴스서천 자료사진)

오랜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민족에게 소는 매우 친숙하고 소중한 동물이었다. 고구려 16대왕 고국원왕(?~371)의 묘로 알려진 평양에 있는 안학3호분에는 검정소· 누렁소· 얼룩소가 나란히 구유에 입을 대고 먹이를 먹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말해주듯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소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이 벽화에 등장하는 얼룩소가 바로 칡소이다. ‘칡소는 소의 몸에 칡덩쿨 같은 무늬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머리와 온몸 전체가 호랑이 같은 검은 줄이 세로로 있다 해서 호반우로도 불린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동요 송아지는 박목월 시인이 중학생이던 1930년 전후에 쓴 시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충북 옥천 출신의 시인 정지용이 1920년대 중반 일본 유학시절에 쓴 시 향수의 일부이다. 위 시들에 나오는 얼룩송아지와 얼룩배기 황소가 바로 우리 토종한우인 칡소이다. 칡소는 소 그림의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그림에서 그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칡소는 해방 전만 하더라도 이 땅의 소를 대표하던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였다. ‘하면 바로 칡소를 말하는 것이었다. 칡소를 기르는 농부들에 따르면 칡소는 매우 영리하고 사람과 감정이 다른 소보다 쉽게 통한다고 한다. 또한 새끼를 낳기 전까지는 매우 성질이 거칠지만 새끼를 한번 낳은 후로는 매우 온순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하면서 검정소와 함께 칡소를 일본으로 반출해내가자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우리 땅에서 가져간 칡소와 검정소를 개량하여 화우로 만들었다. 이후 1960년대 정부의 황우 단일화 정책으로 그 씨가 마를 정도였다.

강원도 영월, 정선, 태백 등 일제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다 20여년 전부터 충북, 경북 등의 지자체에서 칡소 보급에 나서며 현재 전국에 3000여 마리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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