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시 / 서천에서 - 이승철
■ 신년시 / 서천에서 - 이승철
  • 이승철 시인
  • 승인 2021.02.17 23:54
  • 호수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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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

(서천을 방문해 설날 아침 월명산에 오른 이승철 시인이 보내온 시)

 

서천에서

 

이승철

 

문득 마음자락이 신산하고 어지러울 때

서천 들녘 지나 홍원항을 찾아가야지.

푸른 바다의 눈동자를 이슥토록 쳐다봐야지.

일순 모든 게 무너져 내린 코로나 시절

하 수상한 그 세월 속에 누구라도

멍빛 피울음을 남몰래 감출 수 없었다.

이제 그 누구와 함께 살과 뼈와 피를 나누랴.

단절과 별리와 믿음마저 사라진 분단된 이 산하에

눈먼 그리움만 마스크 위로 얼룩진다.

신축년 새해 첫날, 흰 소를 타고 가야지.

산새와 더불어 월명산 정상에 오르니

새초롬한 새봄이 저만치서 움트고 있다.

여보, 저것 봐! 저것 좀 보라고.

부끄러운 듯 아기꽃 새순이 가만히 속삭인다.

저기 동백정 너머 동백꽃들은 저 혼자

피어나기 서러워, 서러워서

붉디붉은 미소로 천상을 우러른다.

돌이켜 보니, 인생이란 먼 길을 걸어왔다.

발바닥은 지상에 뿌리내리되, 머리는 하늘에 두고 살았는가.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내일 또다시 한 송이 꽃을 친견해야지.

그대와 내가 떨군 눈물꽃 들이 마침내 새봄이 되어 달려온다.

 

이승철 시인

1958년생. 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로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한국작가회의 이사 역임. 시집으로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오월>, <당산철교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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