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시
(서천을 방문해 설날 아침 월명산에 오른 이승철 시인이 보내온 시)
서천에서
이승철
문득 마음자락이 신산하고 어지러울 때
서천 들녘 지나 홍원항을 찾아가야지.
푸른 바다의 눈동자를 이슥토록 쳐다봐야지.
일순 모든 게 무너져 내린 코로나 시절
하 수상한 그 세월 속에 누구라도
멍빛 피울음을 남몰래 감출 수 없었다.
이제 그 누구와 함께 살과 뼈와 피를 나누랴.
단절과 별리와 믿음마저 사라진 분단된 이 산하에
눈먼 그리움만 마스크 위로 얼룩진다.
신축년 새해 첫날, 흰 소를 타고 가야지.
산새와 더불어 월명산 정상에 오르니
새초롬한 새봄이 저만치서 움트고 있다.
여보, 저것 봐! 저것 좀 보라고.
부끄러운 듯 아기꽃 새순이 가만히 속삭인다.
저기 동백정 너머 동백꽃들은 저 혼자
피어나기 서러워, 서러워서
붉디붉은 미소로 천상을 우러른다.
돌이켜 보니, 인생이란 먼 길을 걸어왔다.
발바닥은 지상에 뿌리내리되, 머리는 하늘에 두고 살았는가.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내일 또다시 한 송이 꽃을 친견해야지.
그대와 내가 떨군 눈물꽃 들이 마침내 새봄이 되어 달려온다.
※이승철 시인
1958년생. 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로 등단.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한국작가회의 이사 역임. 시집으로 <그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오월>, <당산철교 위에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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