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성현의 글에는 공부를 많이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성현의 글에는 공부를 많이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 송우영
  • 승인 2021.04.22 02:22
  • 호수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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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반복이다/<학즉복學則復> 반복은 지루함이 아닌 익숙함이다.<불혐숙不嫌熟> 반복의 결과는 지킴으로 드러난다.<말수탄末守綻> 이 문장에서 한 가지 기억할 부분은 끝문장 말수탄에서 이다. 는 옷의 꿰맨 부분이 터진다는 옷터질 탄 자이다.

일반적으로 드러난다 함은 드러날 현<>을 쓰는데 드러날현이 아닌 옷터질탄자를 쓴이유는 아마도 드러날현은 수동의 의미가 담겨있고 옷터질탄은 능동의 의미가 담겨있어서 일 것이다. 곧 공부는 내가 몸소 애씀으로 시작되지만 거기에 따른 돌아오는 결과는 내 의사에 관계없이 마치 옷이 터지듯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말일게다. 이 말은 고려 때 문신 서필의 말로 기억되는 바. 서필이라는 사람은 어려서 공부할 때 늘 채워진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했다는 인물이다.

본래 공부라는 것은 허균의 말을 빌면 자신의 몸을 채워<이영기신以嬴其身> 뒷사람에게 남기는 것이다.<비유호후인俾遺乎後人> 이 말의 전거는 맹자 진심장 불성장부달인데 공부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서지 않나니라는 말로 전체 문장은,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며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다.<군자지지君子之志 어도야於道也 불성장부달不成章不達. 孟子盡心章句上>이다.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녀가 나면 어려서부터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고 또 많이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어른이 되어 자기의 삶을 살아갈 때 무지의 한계가 드러남을 막고자 함도 그중 하나일게다. 공부라는 것은 특히 어려서는 무조건 많이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제현의 시화집詩話集 역옹패설櫟翁稗說에 따르면 서필의 아버지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말기의 사람으로 성 밖 산 아래 누옥에서 곤한 삶을 살던 범부였는데 80세에 뜻하지 않은 아들을 얻어 귀한 만큼 공부를 꽤 엄하게 시켰다 한다. 공부를 많이 한 결과 훗날 고려초 제4대 임금 광종光宗 때에 이르러 재상이 된다.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전하는데 한번은 임금의 말을 관리하는 내구內廐에서 말이 죽은 사건으로 조정안의 대소신료들이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서필은 공자의 예를 들어 그 누구도 죄주지말자 하니 이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내구內廐의 관리자가 감사인사를 하자. 고설古說을 인용했을 뿐. 그건 마땅한 일이라며 감사 인사를 물린 일이 있었다.<고려사高麗史>

여기서 말한 고설이란 논어論語 향당鄕黨편에 있는 마구간에 불이 났다.<구분廐焚> 공자께서 퇴청하여 이 소식을 듣고 묻기를<자퇴조왈子退朝曰>, “사람이 상하였느냐<상인호傷人乎>”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불문마不問馬> 는 마구간이라고도 하고 말을 관장하는 관리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공자세가孔子世家와 예기禮記 잡기雜記편에 따르면 공자께서 노나라 대사구大司寇<지금의 검찰총장>를 하실 때 나라에서 관리하는 마구간에 불이 난 사건으로 퇴조退朝는 궁에서 조회를 마치고 조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인호불문마傷人乎不問馬이 문장은 선비들간에 논쟁적이고 소모적인 문장이면서 탐미적이다. 방점을 어디다 놓느냐에 따라서 문장의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인호傷人乎에서 방점을 놓고 불문마不問馬 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상인호불傷人乎不에서 방점을 놓고 문마問馬로 읽을 것인지.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는 사람은 상하지 않았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가 되는 거고 상인호불傷人乎不. 문마問馬. 로 읽으면 사람은 상하지 않았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 물으셨다가 된다. 앞에 것은 주자朱子의 해석이고 뒤에 문장은 왕양명王陽明의 해석이다. 원문에는 방점이 없이 한 문장으로 되어있다.<구분자퇴조왈상인호불문마廐焚子退朝曰傷人乎不問馬>이를 처음 끊어 읽은이가 주자朱子이다. 성인 공자는 왜 이렇게 끊어읽기없이 한문장으로 말을 했을까. 정조의 동궁시절 스승 몽오夢梧 김종수金鍾秀<임정 부주석 김규식의 종고조부>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 바 있다. 성현의 글에는 공부를 많이 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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