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학자는 어떤 물음에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학자는 어떤 물음에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송우영
  • 승인 2021.05.06 10:51
  • 호수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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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년 선조11117일 권좌에 오른지 3개월 7일째 되는 16세의 선조 임금은 경연에서 묻는다.<상왈上曰> “요임금과 순임금을 비교하면 우열이 있습니까?<요순유우열호堯舜有優劣乎> 하니 고봉 기대승奇大升1527-1572 이 말한다<기대승계奇大升啓> 어찌 우열이 있겠습니까.<기유우열자호豈有優劣者乎>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은 다 같이 생지生知의 성인이라<동시생지지성인야同是生知之聖人也> 실로 우열이 없습니다.<고무우열固無優劣>

여기에서 생지生知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생지는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났다는 뜻의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줄임말로 논어論語계씨季氏16-9문장 기록은 이렇다.

공자왈孔子曰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는 상야上也요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는 차야次也요 곤이학지困而學之면 우기차야又其次也니 곤이불학困而不學이면 민사위하의民斯爲下矣니라.”

풀어보면, “공자는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아는 자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은 다음에 배우는 자가 또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백성으로서 바닥이 되는 것이다.”

중용中庸20 문장에서도 혹생이지지或生而知之 혹학이지지或學而知之 혹곤이지지或困而知之 급기지지일야及其知之一也라 했다. “성인聖人은 나면서부터 아는 자요<生而知之> 대현大賢은 배워서 아는 자요<學而知之> 일반 사람은 애를 써서 아는 자이다.<困而知之> 마침내 알았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다.” 고 했다. 이것을 세상은 삼지三知라 불렀다.

그렇다면 공자는 성인이 분명한데 공자는 날 때부터 아는 생이지지자인가. 라는 물음이 생긴다. 여기에 대한 공자 스스로의 답변이 논어論語 술이述而7-19문장에 기록되어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가 아니다.<아비생이지지자我非生而知之者> 옛것을 좋아해서 힘써 알기를 구한 사람이다.<호고민이구지자好古敏以求之者>”라고 밝혔다.

훗날 조선 후기의 학자 최종겸崔宗謙은 인심흑백도人心黑白圖라는 그림책에서 사람을 네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성인聖人, 군자君子, 수사秀士, 중인衆人이다. 그리고 이를 공부하는 양에 따라서 다섯 개의 품계로 분류했는데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 곤이불학困而不學, 교이불선敎而不善이 그것이다. 여기서 나온 책이 곤지기困知記 또는 곤학기困學記, 곧 공부의 어려움을 극복한 기록이다.

다시 이야기는 선조의 물음으로 되돌아가서 고봉의 답변을 들은 16세의 선조는 답변이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아 실록 원문에 선조는 몇 번 반복해 묻는다.<상왈上曰> 요임금과 순임금 중에 누가 낫습니까.<요순숙우堯舜孰優> 고봉은 정자程子의 입을 빌어<대승계왈大升啓曰> “정자程子<정자왈程子曰> 요와 순<요여순堯與舜>은 서로 우열이 없다<경무우열更無優劣>고 했으니 이 말이 과연 그렇습니다.”<사언신의斯言信矣>고 답한다. 여전히 정곡을 찌르는 답변은 아니다.
선조 임금의 물음은 요·순 중에 누가 더 나으냐인데 고봉은 북송 학자 정자程子 곧 정이程颐1033-1107가 제자들에게 했다는 말 요와 순은 서로 우열이 없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것이다. 16세 선조에게 불혹의 대학자로 알려진 고봉은 만족할 만한 답변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사마천 사기 오제본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요임금의 인자함이 하늘과 같았고 지혜는 신과 같았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오제덕五帝德에 그 인자함은 하늘과 같고<其仁如天> 그 지혜가 신과 같으며<其智如神> 태양처럼 마음이 따뜻하여<如日溫心> 구름처럼 땅을 덮으니<如雲蓋地> 임금님의 덕이 밝고 밝아<帝德昭昭> 온 하늘이 함께 경축하네<普天同慶> 유향이 쓴 설원說苑에 요는 어질고 덕이 있어 교화가 널리 퍼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을 주지 않아도 서로 권하고 벌을 주지 않아도 서로 다스렸으니 이것의 요임금의 도였다.“

바꾸어 말하면 요임금이 순임금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다. 그러나 고봉 기대승은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처여후呂后의 오빠 여택呂澤은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자는 어떤 물음에도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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