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이란 세월의 풍랑 속에서 검증에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고전은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수고로움 정도이다.
그런데도 아무 대목이나 콕 찝어 읽어도 에둘러맞음이 또한 고전의 묘미라 하겠다. 예로부터 각 분야의 정상급에 올라선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늘 고전인데 그중에 특히 저들의 주문은 인문학적 사고를 가지라는 것이다. 왜 인류는 이구동성으로 고전을 읽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가지으라 명하는걸까.
고전은 면도날처럼 예리하여 어느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뾰족함은 없다. 그저 산기슭 어딘가에 엎디어있어 찬비 맞아도 좋을 것같은 늘 변함없는 커다란 바위와 같은 그 묵직함이 주는 울림이 산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이란 이름의 책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누군가는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황제를 만들기도 한다.
어느 시대를 무유無遺하고 그 시대마다 필독서라는 것이있다. 송나라 때는 사서삼경이 있었고 명나라 때는 십삼경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성리사서오경이 있었다. 송대사서삼경이라 함은 사서는 대학 · 맹자 · 논어 · 중용이고 삼경은 시경 · 서경 · 역경이며, 명대십삼경이라 함은 시경 · 서경 · 삼례<주례 · 의례 · 예기>· 역경 · 삼전<좌전 · 공양전 · 곡량전>· 논어 · 이아 · 효경 · 맹자이며, 조선시대 성리사서오경이라함은 논어 · 맹자 · 중용 · 대학 · 시경 · 서경 · 역경 · 예경 · 춘경이다. 이중에 성리사서오경은 조선에 태어난 선비라면 죽어서도 문상객을 통해서라도 관속에서 읽어야 하는 업보와 같은 책들이다.
이 중에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 역사에 버젓이 존재한다. 거지에서 황제가 된 인물 주원장이 그다. 주원장은 15세 무렵 절간을 나와 구걸하다가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다’라는 고사를 낳은 여인 로마각露馬脚을 만난다. 그녀는 회서淮西 숙주宿州 신풍리新丰里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회서 땅에 발이 큰 여자 라는 뜻의 회서대발각여인淮西大拔脚女人이라 불렀다. 이는 훗날 얘기고 당시엔 고아로 곽자홍郭子興 수양딸로 살았다.
그녀가 구걸하러 온 주원장에게 맹자 책을 주면서 댓마디 했다고 전하는데 그중 하나가 “명색이 남아로 천하에 뜻을 둬야지 구걸이 어찜이뇨<준마력지재천리駿馬櫪志在千里>”라며 준 책이 맹자라 전하는데 문제는 글도 모르는 주원장이 어찌어찌해서 이 책을 모조리 읽어 냈다는 데 있다. 15세에 맹자 책을 읽고 20대를 맹자처럼 살았고 30대를 맹자처럼 주유천하하다가 원나라 말기 조씨 가문에 붙들려 사지육신 열두마디에 대못을 박히는 참사를 당하고도 살아남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 불혹의 40세에 이르러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다.
인생의 바닥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존엄의 자리라는 황제위까지 오른 인물 주원장朱元璋은 역사가 주지하는 바와같이 어려서 단 한 글자도 공부를 해본 기억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저 해제지동孩提之童에 버려져서 여러 군데 절들을 떠돌면서 밥 얻어먹으면서 유년幼年과 충년沖年의 시절을 보낸게 전부다. 그의 유년 시절은 절간에서 사천왕상 들과 함께 제기차고 놀았다는 기록이 유일이다. 그것도 정사엔 없고 그저 야사에 전해질 정도다. 그만큼 한미하고 비천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성인 공자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기록은 이렇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나는 어려서 천했기 때문에<오소야천吾少也賤> 비루한 일도 많이 할 줄 아는 것이다<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5세 때 시씨 외삼촌을 따라다니면서 말똥 치우는 일을 했다”
그런 그가 15세 때 공부를 시작해서 19세 때 남을 가르칠 실력이 됐고 40세 후반에 중도재를 거쳐 50 초반에 대사구를 지냈고 70세에 이르러 성인의 반열인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喩矩의 경지에 올랐다. 가난이 권장할 바는 못 되지만 성인 공자나 명 태조 주원장을 기준해본다면 가난이 그리 몹쓸 것만은 또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 있어 가난은 오히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킬 줄 아는 절차탁마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