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 승인 2021.10.27 18:48
  • 호수 10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부하지 않는 큰 근심

대략 1500년 전 수나라에는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에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글자 수가 대략 40만자 조금 못미치는 정도인데 수험생들은 이를 모두 외워야만 시험이 가능했다 전한다. 공부 좀 한다는 선비들은 수레에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싣고다니면서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공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학즉비생學則非生> 근성을 가지고 버티는 것이다<위등립경危磴立傾>” 라는 말이다.

위등립경危磴立傾이라는 말은 가파른 돌밭에 기울여선다는 말로 매우 힘든 상태를 말한다. 공부라는 것이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견뎌내야만 쓰임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공부한 사람이 어찌 그쪽 나라 사람만이겠는가. 우리의 선대가 사셨던 조선시대만 해도 그야말로 머리에 쥐날만치 공부에 매진했던 시대이다. 조선시대의 입신양명이란 오로지 한 길 뿐이다. 과거시험에 응시가 유일이다. 과거시험은 일반적으로 각 지방에서 그 지방에 사는 유생들에게 보게 하던 향시인 초시를 시작으로 소과인 생원진사시를 거쳐 국시 대과를 통과해야 하는데 대과는 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시인 식년시式年試와 수시로 열리는 부정기시인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비가의 자녀들은 16세가 되면 향시부터 차근차근 거쳐 올라가는데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에는 율곡 이이가 있으며 15세 나이에 합격하고 나이가 너무어려서 입격을 늦출 수밖에 없었던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있는가 하면 39세에 생원 진사시를 합격하고 이순을 불과 몇 개월 앞둔 59세에 등과한 김득신 같은 인물이 있기도 하다.

김득신이라는 인물은 조선공부사에 있어서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그가 공부한 서재를 일러 억만재億萬齋라 하는데 책을 읽었다 하면 거의 억만번에 가까울 만큼 읽었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억만번을 읽었다는 말은 아닐테고 그만큼 많이 읽었다는 말일게다.

그가 뛰어넘고자 했던 인물 중 하나가 탁문군의 남편 사마상여다. 그는 날 때부터 말더듬이인데다가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이었는데 탁왕손卓王孫의 여식 16세의 이혼녀 탁문군卓文君과 결혼하면서 인생 역전된 인물이기도 하다. 심각한 말더듬이인 그가 단 두군 데서 말을 더듬지 아니한다 전하는데 책을 읽을 때와 시를 성조에 맞춰 읊을 때가 그렇다 한다. 그는 말 잘하는 조나라의 명재상 완벽完璧이라는 고사를 낳은 인상여藺相如를 존경하여 자신의 이름을 사마견자<犬子>에서 사마상여相如로 바꿀 정도로 말을 잘하고 싶어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그는 훗날 뜻을 이뤄 말도 청산유수요 문장 또한 한나라 천하제일이 되었다.

그가 출세하기 훨씬 이전의 어느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장안長安으로 들어가면서 성도成都에 있는 다리 승선교昇仙橋 기둥에 십삼자결十三字訣을 쓰는데 대장부<대장부大丈夫>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불승사마거不乗駟馬車> 이 다리를 다시는 건너돌아오지 않으리라<불복과차교不復過此橋>”며 성공을 다짐하고 다리를 건넌 일이 있다.

이 십삼자결十三字訣 문장을 가슴에 새겨둔 조선시대인물 중 하나가 억만재 김득신이다. 그가 공주公州 땅에서 열리는 향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하여 목천木川땅 집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자신의 낙방시 일수一首가 전하는데 평성平聲 칠언배율七言排律로 압운押韻이 경운庚韻으로 공산도중公山途中이라는 제하의 시다. 풀어쓰면 공산을 지나는 도중에라는 말인데 과거에 떨어진 후 지었다는 하제후작下第後作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다. 출전은 김득신金得臣1604-1684 백곡집柏谷集4<김준섭역 한국고전번역원>에 기록된 글이다.

그가 사마상여가 썼다는 승선교다리의 십삼자결을 모태로 삼았다는 구절이 공산도중公山途中제하의 시가 일곱자씩 모두 16행으로 됐는데 이를 8행씩 나눠 전단 후단으로 구분하여 후단 두 번째 행에서 제주심기우미성題柱心期又未成이라 했다. 풀어쓰면 출세를 기약했건만 또 이루지를 못했구나라는 말이다. 여기서 제주題柱라고 하는 글자가 제목 제와 기둥 주기둥에 써놓은 제하의 글이라는 말로 사마상여의 십삼자결을 가리킨다. 남송의 육상산陸象山의 말 중에 대우불학大憂不學이라는 말이 있다. 공부하지 않는 큰 근심이라는 말인데 출전은 논어 술이편으로 공자는 일생에 네 가지를 걱정했다 하는데 그중 하나가 학지불강學之不講으로 공부는 하되 배운 공부를 열심히 익히지 않는 것이라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