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여우네 도서관 2 - “안녕”
■ 모시장터 / 여우네 도서관 2 - “안녕”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1.11.04 21:14
  • 호수 10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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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마을 어귀 고샅길을 돌아 입장하던 30여명 여우네 풍물패의 어엿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모든 세대에 걸친 사람 구성을 무기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연까지 노려봤지만, 각자의 장단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곧 해산하고 말았지요. 늘 투덜대면서 한글도 배우고, 풍물도 치고, 합창도 했던 마을 어르신들은 이제는 정말 윷놀이 말고는 모두 힘에 부치나 봅니다. , , 새끼 꼬기 순위를 가리기 위해 국회에 요청했던 특별법은 기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하더라도 순위 안에 들 수 있습니다. 법은 필요 없게 되었지요. 예상대로 인간 문화재급 인간들은 모두 한 발씩 뒤로 물러나셨습니다. 인간과 문화에 대한 통찰 없이, 금방 필요가 다 할 법과 순위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멍청하고 허망한 일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한 때는 사방 10리를 주름잡던 희수와 한울이의 도서관이었으나, 그들은 군계를 넘고 도계를 넘어 각자의 동지를 만나는 모험 중입니다. 희수와 한울이는 떠났지만 옆 마을 재우와 은별이가 오고, 조금 더 멀리서 오는 영준이가 야무지게 영글어 갑니다. 고깔모자를 쓰고 춤을 췄던 엄친아(엄마랑 친한 아이)’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을 위해 새로운 고깔모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10여년 째 이어 온 북스타트와 매년 새로운 마을 강좌들, 10여년 째 가부좌를 틀고 있는 여사(여우네 사람들)님들과 매년 새롭게 나타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나아갈 곳과 돌아갈 곳을 따져 길을 이어갑니다. 흔들리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다고, 봅니다.

시간의 흐름은 지혜의 축적이 되기도 하고, 에너지의 고갈이 되기도 합니다. 도서관을 만들고 13년이 흘러 우리는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실은 많이 지쳤나요? 우리는 우리에게 늘 물어 왔습니다.

여우네 도서관 열 세 번 째 문화제가 1113일 가을의 끝자락에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열립니다. 친선과 화목을 넘어 연대의 인사로 드립니다. ‘안녕’. 늘 내 곁에만 머물던 공포와 재난과 비난은, 잘 아시겠지만, 모두의 일상입니다. 당신도 아프고 나도 아프단 말입니다. 일단, 고개를 들고 눈부터 맞춰 봅시다. 함께 춤을 추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첫사랑을 두 번 째 만나는 것처럼, 좀 더 의미심장하게 인사를 나눠 봅시다. 안아....수도 있을까요? 눈가의 미소도 확인되었다면 한 발 더 나가 봅시다. 부모가 우리들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다음 세대에 어떤 안녕을 건네줄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조금 잘못해온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은 묻고 묻고 물을 뿐입니다. 재우와 은별이와 영준이와 더불어 묻고 묻고 또 물을 뿐입니다. 학문學問도 결국은 물음을 배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답이 없어 갑갑하더라도 질문을 놓치지는 맙시다.

그림같은 가을 하늘 아래서 아이들과 한나절 잘 먹고 놀다보면, 글쎄, 하늘에 세우려 했던 나라, 다음 생에 되고 싶은 사람, 돈 많이 벌고 나서 하려고 했던 일들을 지금, 여기서 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부럽고 부끄럽고 고개 숙이게 만들었던 것들은 절대 통과할 수 없는 바늘구멍도 만들어 봅시다. 요걸 만들 땐 좀 강단도 필요하겠네요.

안녕”. 손잡고 잘 놀아 봅시다. 우린 긴 터널을 함께 지나 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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